저녁이 되어 비가 그치고 난 후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거실 창문을 다시 열고, 창문 앞으로 옮겨둔 나의 작은 책상에 저녁 식사를 차린다. 토마토를 썰고, 민트잎을 마음껏 따서 넣고 치즈도 썰어 넣는다. 샐러드 채소에는 블루치즈를 마음껏 넣는다. 오이절임에도 딜을 아낌없이 넣는다. 세 가지 샐러드를 앞에 두고, 또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꺼냈다. 내 방식대로 내가 먹고 싶은 걸 가장 신선하게 먹는다. 가장 신선하게 마신다. 음악을 틀고 창문을 더 활짝 연다. 마침내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살면서 나에게 가장 다정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 김민철, <무정형의 삶> 중에서
매일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사 먹는다. 아주 가끔 도시락을 싸 올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주말엔 최선을 다해 집밥을 차려 먹으려 한다. 일주일 내내 외식했으니 주말이라도 소박한 밥상을 직접, 차려먹자는 데 남편도 동의했다.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밥솥에 밥을 지어 된장찌개나 김치볶음만 해서 곁들여도 괜찮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읽는 것만으로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내 방식대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다는 것. 당연한 말 같지만 세상 어려운 일이다. 돈만 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천지인데 내가 직접 먹고 싶은 걸 차려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가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샐러드 한 접시를 정성스럽게 담아 먹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그 맛과 느낌을 음미하듯 먹을 수 있으려면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 하니까. 이런 순간이 바로 나에게 가장 다정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선뜻 이런 시간을 주진 않을 테다.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무리하지 않아도 나를 돌볼 수 있다. 내 마음을 읽어,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책과 노트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주말이었다. - 김민철, <무정형의 삶> 중에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애쓰고 무리해서라도 나 스스로를 돌보고 있는 요즘, 이런 책 앞에서는 스르르 힘을 뺄 수 있다. 힘 빼기의 기술을 내 것으로 다 만들어버리고 싶다. 왜 이리 힘을 팍 주고 사는지, 왜 힘을 못 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일매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읽어내고,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 만 있다면!
그냥 놓아버리자고, 흐르는 물에 흘려버리듯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에도 힘을 좀 빼보자. 치즈가 듬뿍 뿌려진 샐러드 접시와 시원한 화이트 와인 한 잔이 먹고픈 지금 이 순간에도 후, 깊은숨 한 번에 나에게 다정히 대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