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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 만든다

by 김형준

의미는 나중에 보인다. 그러나 지금 만들어야 한다.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같은 문장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왜 그럴까? 책이 변해서가 아니다. 읽는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그 한 문장의 무게가 달라진다. 책은 늘 그대로지만, 독자는 늘 새로워진다.


나는 이 사실을 ‘책’을 통해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일도 똑같았다. 같은 직장, 같은 업무라도 내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30대의 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의미 없음” 또한 의미가 되었다. 30대의 나는 직장에서 의미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기 바빴다. 일은 생계였고, 업무는 의무였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그때의 나는 나무를 보는 것도 아니고 숲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잡초처럼 휩쓸려 다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50이 되어 돌아보니 알겠다. 그 시간 역시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아무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미는 “그때”가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에 찾아낸다.

그 시절의 나는 혼란이었지만, 미래의 나는 그 혼란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40대의 나는 책임과 압박 속에서 또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그 ‘압박감’이 나를 단련시켰다.

40대는 30대보다 덜 우울할 줄 알았다. 경험도 쌓였고 연차도 늘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더 막막했다. 일은 더 많아졌고, 책임은 더 무거워졌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을 벗어날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해야 하는 일” 앞에서는 내 감정의 여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압박감이야말로 나를 단련시키는 역기의 무게였다. 30대 때 생긴 작은 굳은살 위에 40대의 근육이 더해졌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설 수 있다.


책도, 일도, 관계도 의미는 “사후적”이다. 지금은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우리가 힘들 때는 묻는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 순간엔 답이 없다. 왜냐하면 숲 한가운데 서 있으면 숲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의 의미는 늘 미래의 내가 해석해 준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일에서 의미를 못 찾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미는 지금-여기에서 만들어져 미래에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해석적 의미(interpretive meaning)”라고 말한다. 즉, 일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고 그저 버거운 노동이 되기도 한다.


20대에 한 일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30대가 되면 그때의 실수가 소중해 보인다. 40대엔 또 다른 의미가 붙는다. 50대가 되면 모든 순간이 인생의 재료였음을 안다. 그러니 지금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면 그건 잘못이 아니다. 지금은 미완성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자기 일에 의미를 붙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과거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30대 때 실수투성이였고, 40대 때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 시절엔 의미를 몰랐다. 다만 버티고 살아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절의 내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내적 근력’이 되었음을. 과거를 부정하는 순간, 현재도 흔들리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에게 의미를 부여할수록 현재의 나는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의미는 오늘을 잘 살아낼 때 생긴다. 직장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일 때문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내 ‘시선’ 때문이다. 지금의 하루가 버겁다면 그 하루 속에서 아주 작은 의미 하나만 찾아보면 된다.

오늘 해결한 문제 한 가지.

오늘 배운 기술 한 가지.

오늘 약간 성장한 부분 한 가지.


그 작은 의미들이 내일의 나를 만들고 1년 후, 10년 후의 나를 완성한다. 결국 의미란 거창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힘 있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다.


끝으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줄 말은 단 하나다.

“지금 잘하고 있다. 의미는 나중에 보인다. 그러니 오늘을 놓치지 마라.”


일이 의미 없어 보여도 괜찮다. 그 의미는 지금이 아니라 ‘훗날의 당신’이 밝혀줄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 오늘의 한 걸음을 성실하게 내딛는 것. 그 한 걸음이 내 인생의 모든 의미를 연결한다.




https://youtu.be/cuVPi_Z6H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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