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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30. 2021

혼밥 하는 시간의 힘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인생


먹는 즐거움이 중요한 직장인에게 점심만큼은 선택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또 대부분 동료와 함께 먹다 보니 의견 조율을 통해 선택하게 된다. 그 과정에 서열이 한 몫하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 보다 '먹어야 하는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점심을 주로 백반 전문점에서 배달시켜 먹는다. 그날 식사 인원을 전화로 알려주면 인원수만큼 보내는 주는 식이다. 주변에 식당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시켜먹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만족하지 않았다는 데 이견이 없았다. 맛이 없으면 푸짐하기라도 하든가, 푸짐하게 주지 않으면 맛이라도 있든가, 이도 저도 아닌 한 상에 내 돈을 내야 하는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식단관리를 핑계로 더 이상 사무실 배달 밥은 안 먹겠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실제로 4개월 전부터 내 건강은 내가 챙기자고 마음먹었고 식단 관리를 시작하며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게 되었다.

    

자발적 혼밥을 이어온 지 4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 혼자 먹었을 땐 낯설었다. 직원들이 배달 밥을 먹고 있을 때 근처 빵집에서 파는 샐러드 한 팩을 사 왔고, 직원들이 다 먹고 난 뒤 사무실 한편에서 혼자 먹었다. 그나마 음식 냄새가 안 나서 눈치는 덜 보였다. 몇 주 먹다 보니 굳이 사무실에서 먹어야 되나 싶어 밖으로 나갔다. 12시 정각이면 사무실을 나선다. 메뉴는 정해져 있으니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일도 없다. 반경 1km 내 샐러드를 매장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5분 정도 걸어서 파리***으로 향한다. 모든 처음이 낯설 듯, 처음 파리***에 갔을 땐 문 밖에서 잠시 망설였었다. 매장 앞을 무심한 듯 지나치면서 곁눈질로 내부 상황을 스캔했다. 손님 없이 빈 테이블만 있었고 세 명의 직원이 매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 걸으며 한 번 더 내부를 스캔했다.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3명의 직원이 보내는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부담스러웠다. 처음이 낯설지만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는 건 찰나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냉장고에 진열된 샐러드를 꺼낸 든 뒤 계산대 앞에 섰다.

"할인이나 적립 카드 있으세요?"

"아~ 네 여기요."

통신사 할인 카드를 보여준다.

"적립은 따로 안 하세요?"

"아~ 아니요. 그냥 주세요."

적립 카드 어플을 실행하려는 동안 받게 되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있어도 없다고 했다.

"종이봉투 100원인데 담아 드릴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먹고 가려고요."

내 말을 들은 직원의 눈빛이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흔치 않은 풍경이라 잠시 의아해했을 수도 있다.

"드시고 가실 거면 여기 QR코드 입력 한 번 부탁드립니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으로 영수증과 샐러드를 받아 들고 빈자리 중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일단 한 고비는 넘었다. 다음은 오픈된 자리에서 먹는 동안 매장에 오고 가는 손님, 매장 밖을 지나는 행인의 시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때 살면서 깨달은 걸 떠올린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남들을 의식하면서 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거다. 이때 필요한 건 먹는 데 집중하는 거다.

 

혼밥을 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스마트 폰이다. 갈 곳 잃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잡아둘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다. 하지만 내 시선을 SNS나 동영상에 묶어두면 보는 행위가 우선되어 버린다. 주객이 전도되는 거다. 나는 먹는 동안 스마트폰을 안 본다. 나에겐 먹는 행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화면에 집중하면 빨리 먹게 되는 것 같았고, 이왕 식단 관리하는 거 먹을 때도 천천히 제대로 씹고 맛보자고 마음먹었다. 샐러드 한 팩 해봐야 씹을 게 어디 있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땐 반신반의했고 먹고 나면 포만감이 들까 의아했다. 천천히 씹으면 입안에 퍼지는 향과 식감에 집중하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샐러드를 잘게 부서 때까지 씹다 보면 각각이 가진 쓴맛, 단맛,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건 먹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진하게 전해졌다. 직원과 손님들이 오고 가는 걸 보며 먹지만 그들도 내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10여 분 이상 먹고 나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포만감이 남는다.


혼밥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롯이 내 시간이 된다. 먹는 곳과 메뉴가 정해져 있으니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혼밥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집중한다. 오디오 북을 듣기도 하고, 세바시를 듣기도 하고, 아니면 천천히 걸으며 봄기운으로 달라지고 있는 주변 경치를 즐기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오롯이 그 시간에 집중하고 나면 일에 치인 나 자신을 달래주고, 남은 시간도 힘을 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게 된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이 되진 않는다.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업무의 연장이 되기도 하고, 일에 좇겨 허겁지겁 먹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다음 업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이 많으면 점심시간도 쪼개서 업무를 처리해야 그나마 정시에 퇴근할 수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갈 때면 무슨 생각이 들까? 하루를 열심히 살아 냈다는 뿌듯함은 들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것만이 전부일까?

혼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그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누구의 방해도,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입에 든 음식을 씹을 때 느껴지는 여러 맛에 집중한다. 10여 분 정도 길지 않은 시간을 나에게 집중하고 났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은 여느 시간들보다 의미 있다. 몸에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해주고, 직장에서 너덜 해진 멘털을 바로잡아주고, 남은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의지를 바로 세워준다. 잠깐 여유가 생겼을 때 자극적인 것을 채우려 하기보다 의식적으로 자극에서 멀어져 보는 건 어떨까? 

내가 혼밥 하는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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