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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Apr 20. 2024

20일차. 방어 기제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난 인생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반 친구들 여럿과 옷을 갈아입고 만나기로 했다. 있는 옷 중 어른처럼 보이는 옷을 챙겨입고 어느 허름한 호프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그렇게 입어봐야 미성년자로 보인다는 걸 그땐 몰랐다.

어쨌든 동네에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걸로 유명했던 호프집에 가서 호기롭게 술을 시켰다. 그리고 그날 나는 거의 기어서 집에 갔다. 주량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엄마는 그저 어이없다는 듯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사실 고등학교 내내 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현실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꽤 좋았던 것 같다. 고3때는 야자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독서실에 모여 놀고 공원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난 중학교 때 왕따를 겪고나서(왕따의 기억) 성격이 아주 공격적으로 변해있었다. 누가 나를 공격할까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그러다보니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였던 것 같다. 인상을 팍 쓰고 말을 거칠게 하고 아무도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도록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 선배들이 화장실로 날 불러 시비를 건 적도 있다.


"너 왜 눈깔을 그렇게 떠?"


아직도 그 선배의 말이 생생히 기억난다.

어쨌든 나를 우습게, 만만하게 보는 사람은 확실히 없었다. 그렇게 날카롭게 지내며 싸운 적도 여러번이었다. 길 가다 시비가 걸리고, 술 먹고 싸우고.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공격을 하기도 했다. 여자치고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편이고 운동도 했었기에 난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냥 늘 이런 생각이었다.


"건들기만 해. 다 물어버릴 거야."


으르렁 거리는 개 같았다.(사자나 늑대까지 될 깜냥은 안되어서.) 나는 그게 나의 방어 기제였다고 생각한다. 집안도,돈도,빽도 없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발악 같은 거.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 때 거지같은 애인을 만나면서 나의 성격이 다시 한번 변했다. (그의 가스라이팅)

원래 나의 성격은 소심하고 눈치보고 상처 잘받는 성격이라는 걸 그즈음 깨달았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 센척했던 나의 보여주는 성격은 사라졌고 혼자 울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본 성격이 나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격성은 사라졌다.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는 사회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당시의 내 상태는 '빙그레 씨X' 이라는 말이 딱인 것 같다.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 앞에서는 웃고 있는. 그렇게 제2의 사춘기 같은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을 보내고 결혼을 하면서 다시 한번 성격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날을 세우고 살았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해본다.


아빠 없이,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혼자만의 책임감과 아무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객기로 생겼던 나의 공격적인 방어 기제는 이제 사라졌다.


모두가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비록 타인에게서 지옥을 마주할지라도
그에게 친절을 베풀라.


얼마 전 이 글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난 나만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워왔고, 망나니 같던 그때 내 옆에서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의 삶은 내가 친절을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 철없던 시절을 떠올려 글을 쓰다보니 제법 창피하다. 끝도 없이 나오는 흑역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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