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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Sep 10. 2022

너 나 잘 알잖아.

<안 들려 더 크게 말해봐>

22 ×27cm

watercolor and acrylic on paper

2016




 글쎄 그런가. 아니 그럴 리가. 나는 무당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네가 아니다. 네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네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잘 먹는지 내가 잘 맞춰 온건, 네 취향을 잘 아는듯해 보인 건 70프로는 소위 우리가 ‘인연’이라 너와 내가 우연히 취향과 성향이 비슷한 덕이라 하여도, 30프로는 내가 너를 손 글씨로 노트 적어가며 공부한 탓이다.


  정확히는 나는 너를 잘 아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너를 잘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너를 공부했다. 나 예전에 거기 여행했었는데 , 그거 배우고 싶었었는데 이런 네 입에서 나왔던 소중한 정보들부터 네 폰에서 나오던 음악까지 이 순간이 지나면 잊을 새라 내 눈에 한 번 종이에 한 번  적어두었다.

  또 너는 어떤 때에 가장 작아지는지, 네가 가진 가장 큰 상처는 무엇인지, 네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엇인지 같은 내가 너를 잘 만나가려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알아가야 하는, 알아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조바심을 냈다.  내가 너를 내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더 우리 사이를 필연적 만남이라고 믿게 하고 싶었으니까. 어느 날 우연히 내 인생에 나타난 네가 또 우연히 사라질 새라 서로를 마음의 끈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은 묶어두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나가기 좋아하는 너지만 어느 날은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도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싶은 순간이 올 거다. 술도 못 먹으면서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날도 오겠지. 웬만한 힘든 일은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텨냈었지만 어느 날은 자기를 가장 잘 알아줄 것 같은 사람에게 혹은 오히려 자신과 전혀 연고 없는 누군가에게라도 주절거리고 싶어질 거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니까. 많이 공들였던 일을 망치거나 평가절하 당했을 때. 누가 애써 숨겨놓은 자신의 열등감을 툭 쉽게도 건드렸거나 잊고 있던 과거의 슬픔이 고스란히 갑자기 일상 속에 찾아올 때. 우리는 낯선 행동을 하는 낯선 자신을 볼 수 있지. 혹은 반대로 생각보다 준비한 거 없이 일이 잘 풀린 날에도 우리는 오버페이스의 자신을 만나지. 그날만큼은 세상이 만만해 보이잖아.


 내가 알던 네가 사라진 날. 사실 그날은 괜찮아. 평소보다 내게 마음을 닫은 너도, 평소보다 기분이 들뜬 너도, 평소보다 내게 기대 오는 너도 다 너의 숨어있던 다른 모습들인 걸 내가 아니까. 변한 게 아니라 그 모습들은 너라는 달의 뒷면이라는 걸 아니까. 너라고 믿었던 너의 모습들은 온데간데없는 내 앞에 앉은 낯선 네게 나는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거야. ‘너 나 잘 알잖아. 이런 날 좀 이해해줘. 내 이야기 좀 들어줘’하며 내게 기대 오는 네가 부담스럽기보단 나는 감사할 테니까.


  그날은 그냥 네가 평소와 달랐던 날 하필이면 그날 나도 평소의 내가 없었을 뿐이다. 10시간 동안 편집한 영상파일이 실수로 날아갔거나. 혹은 몇 년 동안 안 생겼던 눈 다래끼가 갑자기 하필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 아침에 생겼다든지. 누군가 차를 긁고 갔다거나 뭐 그런 일들 중 하나가 반드시 일어났을 거다. ‘너 나 잘 알잖아’라고 말하는 네게 ‘보통 자기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데 내가 널 어떻게 알아.’가 불쑥 튀어나와 버린 그날. 내가 억지로 필연의 이미지를 씌우고 싶었던 너와 나의 인연이 민낯을 내밀던 날. 내가 모르는 너와 내가 모르던 나 자신이 처음 만나던 날. 너와 내가 만나 만남이 시작되었듯이 내가 모르는 너와 내가 모르는 내가 만나는 날 헤어짐이라는 단어는 처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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