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변호사
그 남자의 웃음은 과장된 만큼 슬펐다. 텅 빈 눈빛에서는 쓸쓸함마저 묻어 나왔다.
아픈 사연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저주해야 할 만큼 남자의 운명은 잔혹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 주던 운명 같은 사랑은 살해당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도한 적이 있는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면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다.
부르스름하게 발목부터 변하기 시작하더니 엄마는 죽음을 맞이했다.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무례하지도 않은 의사는 엄마의 색 변한 발목을 바라보고는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다며 무심히 말을 건넸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그 말로 인해 내 마음에는 수많은 파장이 일어났다. 지난 몇 년간 쉬지 못한 나는 여기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졌다.
고되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처절한 암투병의 종착지에서 엄마는 진통제 없이는 한나절도 버티지 못했다. 손톱으로 벽을 파고 망상에 시달리는 긴 가을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햇살은 그 누구에게나 미소를 보냈다. 비라도 퍼부었으면 속이라도 덜 상했을 텐데 빌어먹을 날씨마저 좋았다.
억수같이 퍼붓는 소나기에 지훈은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울고 싶었을 거다. 기가 막혀서 눈물조차 안 나오던 참에 누가 와서 뼘이라도 때려줬으면 싶던 차에 때마침 소나기가 온 거다.
모든 걸 놓아버린 듯 대자로 누워 있는 지훈은 링 위에 쓰러진 복서 같았다. 그 지친 복서 옆에 한 사람이 덩달아 눕는다. 아무렇지 않게 옆에 누운 주영을 바라보며 지훈은 웃는다.
세 번째 웃음. 주영은 지훈에게 자신을 보고 세 번 웃으면 사귀자고 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함께 비를 맞아 주던 주영은 이제 지훈 곁에 없다. 주영의 사무실을 찾아온 지훈은 주영이 남긴 수임료 1,000원이란 글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변호사 이주영의 자리를 검사 천지훈이 천원짜리 변호사가 되어 지킨다. 단돈 1,000원 수임료를 받고 인생의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는다.
기본이 몇 백만 원이나 하는 변호사 수임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다. 변호사 수임료만큼은 아니지만 상담료도 장기간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담을 망설이게 하는 큰 벽이다.
여전히 비는 내릴 것이고 바람도 불어올 것이다. 인생의 세찬 비바람을 맞고 있는 이들에게 나도 언젠가는 천원짜리 상담가가 되어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