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정신 차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그때는 ‘매일 그림 그리고 싶다’ ‘평생 그림 그리면서 살아야지’라는 순진한 꿈을 꿨다.
화구통을 메고 미술학원을 다니는걸 꿈꿨고 미대에 갈 거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미대에 가는 상상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학년만 들을 수 있던 미술수업이 있었는데 그 수업이 너무 듣고 싶었던 나머지 무작정 그곳으로 가 다짜고짜 선생님께 그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꼬맹이의 간절함이 통했던 건지 선생님은 제일 맨 뒷자리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셨다. 고등학교 때는 미대 지망생 아이들이 듣던 수업이 듣고 싶어 미술 선생님께 부탁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도 난다. 조용했던 내가 그런 용기를 낼 정도로... 그만큼이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을 하라는 아빠의 걱정, 비싼 미술용품 가격, 비싼 미술 학원비에 꿈은 꿈이고 돈 벌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는 꿈과 희망은 썰물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버렸다.
사실..
힘들게 가 아닌 편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솔직히.
무엇을 그릴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그림 그리는 것만 좋아했지 그림으로 먹고 살 자신 또한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일을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리는 일’과 관련된 일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그것에 만족 못하고 또 내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림을 그려댔다.
하지만 내 그림이 남들이 좋아할 거란 믿음도 없었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파는 게 왠지 미안해 그림에 가격을 붙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나는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어!” “유명해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선 “넌 그럴 자격 없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복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며 시간만 잡아먹고살다 뒤늦게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해지자 그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그런데 최근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또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다.
‘아니야 아니야 정신 차려..’라고 나 자신에게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뭐지? 막상 그리려고 하니 아무것도 그릴 수 없었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왜 아무것도 못 그리는 거지? 분명 머릿속에 뭔가를 그리겠단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려는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