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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ul 16. 2023

허리가 아픈 줄 알았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 두 분께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이도 비슷했다. 미영보다 10살쯤 더 먹은 30대 중후반, 두 아이를 둔 아빠, 한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게를 짊어진 것마저 닮은꼴이었다. 췌장암과 담낭암. 병명은 달랐지만, 그들이 겪는 증상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병명, 병기, 통계수치 같은 것들은 증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 환자가 사는 '오늘'을 바꾸지는 못했다.  아마 병원을 찾게 되기 전까지 암 덩어리들이 그들의 삶을 크게 흔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전자 복제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나 만들어진, 기존 세포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장 난' 세포들은 우리 몸의 방어체계에 의해 자연적으로 파괴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암세포는 우리 몸에 기생하며 세를 넓혀간다. 결국에 장기를 짓누르고 정상적인 소화, 내분비 등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쉽사리 체하고 토하고, 분비관까지 막히면 노폐물이 몸에 싸여 황달이 생긴다. 황달이 빨리 나타나 주면 행운이다, 그나마 병원을 일찍 찾아오게 되니 말이다. 뼈에 암이 생기면 인체의 형태를 만들고 힘과 무게를 지탱하는 능력을 잃게 되어 쉽게 부러지게 된다. 통증 또한 극심해서 곁에서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이들을 짓눌렀던 것이 증상뿐이었을까. 1년 간 제대로 된 건강검진도 받지 않고 한의원에서 쑥찜질과 침으로 버텨왔던 건 그가 미련해서, 통증에 둔감해서, 건강에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최선호 님은 오랜만에 면회 온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때처럼 기운이 없어서 침대에 누운 상태였다. 피부는 노랗다 못해 검게 변했고, 찜질을 해 댔던 허리 피부는 죽음처럼 어두운 띠를 두르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다른 환자들은 산책이라도 나간 모양이었고 6인실에는 그의 가족만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하며 병상 사이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얘들아, 아빠 낮잠 주무셔야 하니까 좀 조용히 놀아."

"아니, 자기야. 그냥 놀게 둬. 녀석들 신났는데."


그가 어떻게 임종했었는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말수가 없었다. 혈액검체를 뽑거나 수액을 놓느라 팔을 찌를 때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린 적이 없었다. 통증이 심했을 텐데, 화창한 날 산책 나가고 싶었을 텐데. 짜증 한 번 낸 적도, 무언가를 요구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갔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환자는 없었던 것처럼.


심용선 님은 달랐다. 그는 수다스럽고 쾌활했다. 커튼을 치고 틀어 박힌 적도 없었다. 차오른 복수로 '임신 8개월'이 되었다며 킥킥거렸다.

"미영쌤, 내 배 한 번 만져볼래요? 여기 암 덩어리가 그냥 만져진다니까."

복수를 빼내서 배가 말랑해진 날은 수시로 자기 암 덩어리를 확인하는 듯했다.

"이 녀석들이 점점 커지네. 예전에는 거의 안 만져졌었는데 지금은 아주 커졌어."


미영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미영의 손을 잡아끌어 명치 즈음에 갖다 대었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흠칫 놀라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죽음의 살가죽을 만진 것 같아서 놀랐고, 너무 뾰족뾰족 거칠어서 놀랐다. 암이 피부를 통해 옮을까 걱정하는 무식쟁이처럼 보일까 봐, 왜 덤덤하게 반응하지 못했을까 자책했다.


심용선 님의 임종은 미영이 똑똑히 기억한다, 어제 일처럼. 1인실로 옮긴 후 일주일도 더 넘겼던 것 같다. 신장까지 전이가 되어 등 뒤로 소변을 빼내는 카테터를 꽂은 채, 엄청나게 부푼 배 아래로는 양다리와 고환마저 퉁퉁 부어 있었다. 배를 가득 채운 복수가 하체 순환을 꽉 틀어막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느긋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켜보는 미영은 그게 더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자기야, 내 다리 좀 주물러 줄래?"

"아이 참, 알았어. 이 커피 좀 마시고 나서."

밤 11시. 오늘도 밤을 새워야 하는 아내가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정성스레 녹여서 이제 막 한 모금쯤 마셨던 때였다. 미영은 수액백을 교체하러 그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보호자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목격했다.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고마와요."


부른 배 덕분에 자기 다리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미영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는, 흠뻑 젖은 스펀지 같은 다리를. 늘어나다 못해 파충류 껍질처럼 조각조각 갈라져 비늘이 벗겨지는 피부를.


"미안한데, 저 사람 이불 좀 덮어줄래요? 손이 안 닿아서..."

새벽에 소변 주머니를 체크하러 가면 그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깨어있었다. 임종실에서 보내는 열흘동안 깜빡깜빡 졸기만 했을 뿐 푹 잠들지 못했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며 마지막까지 모르핀 주입을 원치 않았다.


오랜만에 같은 병동에서 일했던 진아와 연락이 닿았다. 밤 근무가 힘들어서 주간 부서로 옮겼고, 결국 병원을 그만두면서 연락이 끊어졌었다. 꽤 친하게 지냈었는데, 막내끼리 두 팔 걷어붙이고 일손 거들어주는 사이였는데. 결혼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애 키우고 일하느라 서로를 찾거나 궁금해할 틈도 없었던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너 그때, 나한테 인계하면서 내 근무타임에 돌아가시는 분 있겠다 싶으면, 환자 임종하면 나 불러, 그러면서 소파에 드러눕던 거 생각나? 새벽에 퇴근 안 하고 휴게실에서 자고 있다가 튀어나왔잖아."

"그래, 너도 그랬잖아. 신규라 일처리 서툴러서, 도저히 혼자 감당 안 됐으니까."

"슬퍼할 틈도 없었지, 겁나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눈앞은 핑핑 돌고. 이제는 다 옛날 일이네."


"참, 너 최선호 님 기억나? 허리 피부가 변색될 만큼 찜질만 하다가 늦게 췌장암 진단받고 수술도 못 하고 금방 임종했던."

"그럼, 기억나지. 그 마누라가 너무 개차반이어서 기억해."


진아의 이야기는 이랬다. 최선호 님 아내는 하루도 병실에서 잔 적이 없었다고, 그게 참 희한했었다고. 그러고 보니 최선호 님은 사설 간병인만 두었었다. 부부 모두 외동에, 양가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애들 엄마는 어린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자기는 간병인 도움을 받으면 병실 생활에 문제없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아내가 아이 둘을 다 데려왔던 것도 그때 딱 한 번이었다, 미영이 봤던 걸로는. 그녀는 트위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도 어디 격식 차리는 곳에 가는 것처럼 멀끔히 입혀 왔더랬다. 그녀는 다음 약속이 있어 금방 일어나야 할 사람처럼 의자 끝에 걸터앉아,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번갈아 보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내라는 작자가 지 남편 입원기간에 이혼 도장을 찍고 재혼을 했었다고, 임종 때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아는 혀를 끌끌 찼다.

"그때 너는 신혼여행 가고 없었잖아. 신규가 결혼 준비하느라 혼이 나갔다고, 선배들이 욕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암튼 그날, 마누라가 전화도 안 받고, 연고 없는 임종 처리하느라 진땀 뺐어. 어떤 년인지 면상 한 번 못 봤지만, 아주 나쁜 년이지. 아무리 그래도 지 새끼 아빠 아니니?"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살아가야 할 걱정에 훗날을 대비하느라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않은 아내와 그걸 허락하고 순순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 준 남편. 어린아이들은 시댁에 맡겨두고 작고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던 아내와 임종 직전까지 그런 아내를 되려 걱정해야 했던 남편. 어느 쪽이 더 비극일까.


허리만 아팠을 리가 없다. 의학서적에 나열된 증상 말고도, 의사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증상 말고도, 환자들이 느끼는 증상은 훨씬 더 다양하고 사람마다 독특하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르다는 걸 분명히 느꼈을 거다.


매일 출근해야 하고 잔업은 야근을 해서라도 끝을 내서 승진해야 하고, 아파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 참아야 하고, 남자이니 울어도 안 되고 아야, 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자기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투정 부리고 악다구니를 써도 안 되는 걸까. 몸과 마음이 보내는 이상신호를 외면해야 할 만큼, 현실의 부담감과 주변의 기대가 무겁게 그들을 짓눌렀던 걸까.


미영은 진아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그들의 마지막을. 그걸 다 보면서도 정신을 부여잡고 '업무'를 해 냈었다. 아마도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 인생이 다 보이지 않아서,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서, 병원이라는 일터가 '감상'에 빠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었다. 지금의 미영과 진아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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