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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Dec 03. 2023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방암에 포위당했다

  우리 이모는 환갑에는 유방암, 칠순에는 자궁암을 진단받으셨다. 이모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보증을 잘못 선 바람에 남의 빚까지 갚느라, 아파트도, 자동차도 모두 처분하고 마흔부터 갖가지 허드렛일을 해 오셨다. 사촌 동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이제 허리 좀 펴고 살겠지, 안도한 것도 잠깐이었다.


  우리 엄마는 더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고등학생 때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단다. 막내 이모는 양성이긴 했지만 난소 종양을 제거한 적이 있었고. 이 정도면 내가 공포에 가까운 건강염려증을 가진 것에 타당한 이유가 될까.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언니, 나 암센터 진료 보게 됐어. 가슴에 멍울이 잡혀서 동네 산부인과 진찰받으니, 조직검사하래서."

  '만약에 '그게' 맞으면 어떡하지.'

  우리 둘 다, 이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다행히 동생의 혹은 양성이었고, 그 해 순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갑내기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첫 임신을 했던 15년 전, 영어 연수 6개월 간 룸메이트였고, 몇 해 후 같은 대학원에 다니게 되어 간간히 점심식사도, 쇼핑도 함께 했었다. 이제는 그가 한창 꼬물거리는 미취학 자녀 둘을 돌보느라 바쁘기에,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었다.


  "나, 유방암이래."

  그는 눈물 한 방울 섞지 않고 떨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수많은 눈물과 공포를 겪어낸 후였으리라.

  "시어머니가 아는 분이 모 대학병원 유방암 권위자여서, 그분한테 치료받기로 했어. 다행이지?"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그 길로 책 세 권을 샀다. 의사, 약사의 체험수기와 '명의의 지침서' 한 권. 같이 공부하자, 이렇게라도 너를 응원하마, 약속했다. 항암치료받는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박박 밀었던 광고 속 명세빈처럼.


  암(cancer)은 '게'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뾰죡한 집게발로 정상 조직에 붙어 기생하며, 점점 파고들어 결국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암의 특성을 그려보게 한다. 무엇 때문에, 눈 하나 달린 절름발이 세포가 그토록 빠르게 증식해서 멀쩡한 세포를 압도하게 되는지, 현대의학은 답하지 못한다. 교과서 몇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관련 요인' 목록에서, 확신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 모든 요인을 회피하기로 한다,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지난 세기, 화학물질을 배에 가득 실어 옮기는 일을 했던 선원들이 백혈병에 걸렸다. 이 독극물이 우리 몸에서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파괴하는 것에 착안하여, 암세포를 죽이는데 이용하는 것이 '항암화학요법'이다. 즉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내 멀쩡한 모근, 피부, 위장점막, 골수 세포들도 함께 죽어야 한다. 그로 인한 부작용과 고통을 지켜본 나로서도, 그들이 겪는 고통은 결코 알 수 없다.


  막상 아프고 치료받는 사람,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취하니, 책 세 권으로는 그 모든 궁금증과 염려에 속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아픈 친구에게 도움 될 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씩씩하게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마쳤고 퇴원 후 약을 먹으며 예전과 같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앞으로 5년 간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라는 도장을 받게 될 테지만, 앞으로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과 더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어서, 유방과 난소 없는 삶을 선택했다는 유명 여배우의 사연을 접했다. 친구의 유방암 소식을 접한 때여서 그의 이야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서 거금을 들여 'BRCA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나의 가족력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에는 충분치 않았지만, 그 당시 심리상태로 백오십만 원쯤은 대수가 아니었다.

  "나한테 유방암 유전자가 있는 걸로 나오면, 너도 나처럼 수술을 고민해 봐야 해."

  동생에게 검사받은 사실을 통보하고, 3주 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음성입니다."

  "휴..."

  설마 양성이면 절제술이라도 받으려고 그랬어? 의사는 표정으로 그리 물었다. 'BRCA 유전자' 검사 결과가 절대적으로 무언가를 담보해 주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이 유전자가 양성이면 치료도 어렵고 뇌 전이 등으로 예후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방법이 개발되어 왔고 복잡한 지표들이 더 밝혀졌기 때문에 이 검사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확신하거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앉아서 그냥 기다리기는 싫었다. 우리 엄마보다는 더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 곁에 살아있고 싶었다. 내 가슴을 더듬는 게 내키지 않아도, 생리 직후에는 거울에 미친 유방을 들여다보고, 겨드랑이부터 유방 전체를 꼼꼼히 촉진해 본다. 나처럼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이라면 마흔부터는 건강보험공단 검진에 더해, 반년에 한 번씩 유방외과 검사(방사선 촬영, 초음파 검사 등)를 받는 게 좋다.


  내 가슴에도 작은 혹 2개가 있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방과 난소를 떼어 내는 대신, 좋아하던 술을 끊고, 밤 근무가 필수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경구 호르몬제가 아닌 방법으로 피임을 하고, 채소를 밥상에 자주 올리고, 매일 어떤 식으로든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몸을 움직인다. 유방암 위험요인 목록에 새로운 무언가가 추가된다면, 또다시 내 생활을 변화시킬 것이다. 수많은 유사답안에 따라 살아간다, 우리는 정답을 모르므로.


'내 몸에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진작 알아채고 검사를 받았으면 이렇게 수술까지는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동안 젊다고 자만하며 내 몸이 내는 소리에, 내 몸이 변화하는 모습에 귀 기울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았던 일들이 너무 후회되기 시작했다. 네 몸이, 내 가슴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  박경희, 이수현, 「유방암, 굿바이」, 봄이다 프로젝트, 2020, p.14.



<참고자료>

1) 한국유방건강재단 - 유방건강 - 유방암 정보 - 검진

2) 김성원, 「유방암 명의의 유방암 희망 프로젝트」, 동아일보사, 2019.


*사진: Unsplash (Angiola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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