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웅크리기 있기? 없기?
승진에서 떨어지기 싫으면 매년 체력검정에서 3km를 20분 내에 완주해라, 15분 내에 완주하면 가산점을 주겠다. 그게 내가 얼마 전까지 일하던 곳의 규칙이었다. 의무적인 '빨리' 달리기. 그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고 나 같은 약골에게는 심계항진과 과호흡을 유발하여 도리어 방해가 되곤 했다. 내 팔과 내 다리가 아닌 것이 흐느적거리며 제자리를 뛰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를 달고 살았고, 급기야 단골 한의원 할아버지 선생님이 천식이라 진단하셨단다. 아버지는 굼벵이가 성장하며 벗어 놓은 '껍질'이 특효약이라고 하시며 겨울마다 달여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를 치게 되는 맛이었다. 암튼 호흡기가 약하고 운동신경까지 없는 게 나란 사람이다.
사관학교 입학시험은 어떻게 통과했냐, 졸업은 어떻게 했냐고 물으신다면, 입학시험은 아마도 턱걸이로 간신히 통과했고, 생도 4년 간 억지로 끌려다니며 체력이 조금 생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생도생활 중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체력검정 특급을 못 받은 경우, 돌아오는 주말에 외출을 할 수 없는 '형벌'이었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 벌이 무서워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금요일 체력시험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다가 3학년을 맞으면서 급반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3학년쯤 되었으니 체력도 좀 늘었고, 이제는 에헴, 하며 고학년으로서 품위 있게 통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다. 마침 욕심 많은 똑순이들을 룸메이트로 두었다. 하루 3번 연병장 주변으로 1km씩, 셋이서 담소 한 마디 안 하고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뛰었다.
아침 점호가 끝나고 공복에 1km, 점심밥 먹기 전 1km, 저녁밥 먹기 전 1km를 뛰었다. 우리 중대의 점심 먹는 순서가 앞이면, ‘새모이’만큼 먹고 쉬다가 뛰러 나갔다. (꼴에 좀 배웠다고 '위하수증'에 걸리기는 싫었던 거다.) 저녁 시간에 여유가 좀 있으면 2km쯤 뛴 후에, 시간을 재며 윗몸일으키기도 했다.
'G. I. 제인'이라도 될 기세로 셋이서 엄청나게 운동을 해 댔다. 결과는, 당연히 특급이었다. 나 같은 사람도 2분에 윗몸일으키기 70개를 미소 지으며 가뿐히 해 내고, 그 당시 체력검정 달리기 거리였던 1.5km는 단거리로 여기며 여유롭게 끊을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사관학교는 이래서 대단한 곳이다. 그 집단 안에 있으면 나 혼자라면 못 했을 것도 해 내게 된다.
그러나 졸업 후 결혼을 하고 2번의 유산, 2년 간격으로 2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5~6년 간 체력검정을 쉬었고, 그 세월 속에 나는 어느덧 디스크 환자에, 복부와 엉덩이 근육을 상실한 저질체력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둘째를 낳고 정확히 1년이 되자 체력검정받으러 나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이를 돌봐주는 분께 돌배기를 맡겨 놓고 비장한 각오로 집 근처 헬스장에 나갔다. 트레이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내 목표는 체력검정 통과네, 통과 기준은 이런 것이네, 읊어 주었다.
"그럼 윗몸일으키기 한 번 해 보실까요? 자, 여기 누워서 해 보세요."
"끄으, 흥!"
기합만 요란할 뿐, 설마 나 하나도 못 하는 거니, 스스로 비웃는 상황을 목도하였다. 복근을 더듬거려보니 배꼽 주변으로 손가락 몇 개가 쑥 들어간다. '복직근 이개.' 모성간호학에서 배웠었지. 이 정도 틈이면, 장이 빠져나오지 않았던 게 기적 아니니? 출산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렇다고?
그날부터 'G. I. 제인'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다. 똑순이 룸메이트들은 졸업 후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고 강원도, 부산 병원에 발령받아 각자 열심히 살고 있었다.
"회원님, 얼굴이 창백하신데, 괜찮으세요?"
"네헤, 갠찮, 아효."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이 양반아. 걱정 마셔. 내가 간호사인데 탈진 올 정도로 러닝머신 뛸까 봐? 내가 요 근래 운동을 안 했어서 그래. 곧 좋아질 거라고, 두고 봐.
그해 가을, 3개월의 혹독한 훈련 끝에 체력검정 무대에 다시 섰다. 올림픽 선수만큼은 아니겠지만, 중년 선배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장하게 출발선에 섰다. 이번 코스는 아주 지루하게 약경사가 이어지는, 은근히 사람 죽여주는 코스였다. 그러나 나는 대머리 선배님 뒤통수를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삼아 선방하며 가까스로 1급을 획득했다. 다음으로 윗몸일으키기.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2분 내내 용을 썼는데 57개라고? 충격이 워낙 컸기에 지금도 그 숫자를 잊지 못한다. 왕년에는 70개를 웃으면서 마치고 남은 30초는 쉬었는데, 노장은 웁니다.
큰 병을 이겨내고 열심히 글을 쓰는 어떤 작가님의 인스타를 보면, 정기적으로 달리기 인증 글이 올라온다. 나는 그분을 응원한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자신을 위해서 뛰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게 운동은 왜 하냐, 운동하는데 드는 시간도 꽤 되는데 그 시간보다 수명이 더 느는 거 확실하냐, 묻는다.
20대 생도 때 운동은 주말 외출을 뺏기기 싫어서 했고, 30대 대위 때 운동은 승진에 손해 보기 싫어서 했고, 지금은 병치레하며 살기 싫어서 한다. 아니 그보다는 생도 3학년 때처럼 꿈이 생겼다. 근육질의 아줌마로,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살고 싶은 거다. 2022년 3월부터 9개월 남짓, 이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운동을 했고 내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름에는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일주일에 3~4번 꾸준히 했다. 그 결과, 좌식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엉덩이 상실 증후군'을 극복하고, 내 엉덩이 근육이 어디에 있는지 뇌에서 인지하게 되었다. 6개월쯤 홈트와 온라인 그룹 운동만 하니, 센터에 모여서 얼굴 마주 보고 하는 운동이 그리워졌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2~3번, 20분 거리에 있는 필라테스 센터로 운동하러 간다. 가는 길에는 몸에 시동을 거는 셈 치고 뛴다. 빨리 뛰면 귀가 많이 시리니 날씨를 봐 가며 속도 조절을 좀 해야 한다. 장갑, 목도리, 추운 날은 모자도 필수다.
내가 마흔이 된 지금 새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2023년 새해에 운동을 계속할 결심을 하는 것도, 어쩌면 이십 대 초반 사관학교에서 보낸 4년의 시간 덕분일 거다. 함께 했기에 어려운 일도 이겨냈던, 그 시절 말이다.
덧) 추운 날, 새벽에 운동하러 나서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특히 고혈압이 있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목도리 두르시고 방한복을 잘 챙겨 입으시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추운 환경에 갑자기 노출되면 우리 몸의 혈관이 자연히 수축하게 되고, 이때 평소 약하거나 뻣뻣해져 있던 혈관이 터질 수 있답니다. 겨울철 운동은 가급적 실내에서 하시거나 야외 기온이 올라가는 낮에 하세요.
* 사진 출처 : Unsplash (Greg Rosen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