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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Mar 12. 2022

봄은 지금이다


3월 둘째 주 '봄'




모두가 봄을 찾는다. 봄 어디에 있을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서 찾지 못하면 봄을 맞으러 멀리 떠나기도 한다. 제주에는 유채꽃이 가득하며 하동에서는 벚굴이 숨고 매화가 살그머니 얼굴을 비친다. 우리가 찾는 봄은 조금씩 다가오는데, 아직까지 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 나온 평범한 수요일이었다.



2019년 갤럽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 봄이라고 한다. 삼 년 전 자료라서 지금은 변했을 수도 있지만 전체 응답자 중에 42%나 봄을 선택했다. 다음으로는 가을(40%), 겨울(10%), 여름(8%) 순이다.


하지만, 2004년과 2014년 설문 결과는 다르다. 가을을 가장 좋아했으며, 매번 비슷한 수준으로 선호했는데, 봄은 33%불과했다가 10%가량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변했다. 아마도 봄에 황사로 고생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만연했다가 미세먼지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단순한 추정일 뿐이다. 오 년 단위로 동일 설문을 하는데, 올해는 아직 오 년이 지나지 않아서 결과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봄은 여전히 가을과 비슷하게 좋아하는 계절일 것이다.


나도 봄을 좋아한다. 반의반 정도로 좋아하는데, 미묘한 차이로 겨울을 제외한 다른 세 계절을 비슷하게 좋아한다. 굳이 나눈다면 봄(32%), 가을(28%), 여름(25%), 겨울(15%) 인데, 가을이 되면 가을로 바뀔게 확실하다. 늘 그렇게 살았다.


봄을 좋아하는 이유는 춥지 않아서 야외 활동하는데 제약이 적다는 점과 아내와 둘째 생일이 삼월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 글쓰기 주제가 봄이라서 머릿속으로 계속 봄만 생각하고 눈과 손으로는 인터넷 검색도 하며 평소와 다르지 않게 달리기 위해서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0m, 봄을 찾아 나선다.

호수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내와 함께 준비운동을 하면서 분수대 옆을 지나간다. 분수대는 멈췄다. 준비 운동을 충분히 했지만 아직 몸이 개운하지 않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구간은 완만한 내리막길인데, 아직 봄이 느껴지지 않는다.


500m, 봄을 잘 모르겠다.

비슷한 곳이 계속 스쳐 지나간다. 달리기 시작할 때 가장 힘든 구간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봄보다는 겨울이 더 많아 보인다. 고민한다. 봄을 찾는 것보다 아직 겨울임을 인정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1000m, 봄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봄은 짧게 느껴지기 때문에 어느 지점이 봄인지 헷갈린다. 몸이 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반의반도 달리지 못한 상황이라서 봄 찾기를 포기하고 싶어 진다. 주변에 보이는 나무에 볏짚이 둘러싸인 것을 보니 봄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1,500m, 봄이 보이지 않는다.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봄을 만끽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땀은 나지 않고 불편한 기운이 계속되지만 분명 누군가 봄이 왔다고 했기에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고 묵묵히 달린다. 잠시 정면에 보이는 하얀 화살표만 따라간다.



2,000m, 봄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 봄을 찾아 나온 사람들과 자전거가 혼재되어 앞길을 막는다. 공원에 앉아있는 어르신은 아직 패딩을 입고 있다. 굴다리만 통과하면 목표의 절반이 가까워지는데, 봄인지 모르겠고 굴다리는 유독 어둑하게 느껴진다. 굴다리를 지나자 힘든 오르막길까지 나타난다.


2,500m, 봄처럼 보이지만 확실하지 않다.

절반 정도 달리는데, 지난주까지 꽁꽁 얼어있던 호수가 녹은 게 보인다. 봄의 조짐이다. 잘하면 곧 봄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 움츠린 사람들이 많지만 반팔과 반바지로 달리는 사람을 목격했다.



3,000m, 봄이 꿈틀거린다.

목표까지 절반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호수 위 정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봄을 찾아서 사진에 담는다. 순간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아빠 자전거 뒤에 탄 아이의 웃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 분명하다. 봄이 움직인 것이다. 아이 미소는 봄을 가져왔다. 드디어 봄의 꿈틀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3,500m, 봄 내음이다.

기분 좋은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한 발 앞서 달리는 아내에게서 품어 나오는 산뜻한 향기는 봄 내음이다. 호수에 비치는 햇살은 윤슬을 만들고 봄기운을 담아 내 코를 통과하여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숨이 차야하는데, 호흡이 가볍다. 몸은 달아올랐고 주변이 넓게 보이며 오감이 열린다.



4,000m, 봄이 들린다.

플레이 리스트에서 나오는 노래는 크르르의 흰이다. 홋카이도가 등장하는 눈이 가득한 겨울 노래인데, 봄처럼 들린다 아니 보인다. 눈밭을 걸어가던 영상이 떠오르지만 이상하게 겨울과 작별하는 기분이다. 확실한 봄이 들리며 보인다. 노랫소리를 뚫고 귓속으로 들리는 음악이 있는데, 아이들 웃음소리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해맑은 아이들 웃음이 넘친다.



4,500m, 봄이 보인다.

분명, 오르막 길인데,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한편에 보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아이의 발차기가 힘차다. 아빠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면서 크게 웃는 아이 미소는 마스크를 뚫고 나온다. 몸은 지쳐야 하고 땀에 젖어 찝찝해야 하는데, 산뜻한 기운에 날아갈 것만 같다. 가벼워진 몸은 톰슨가젤 마냥 통통 뛰어서 앞으로 나간다.


5,000m, 드디어 봄을 찾았다.

아내가 스퍼트를 낸다. 뒤에서 바싹 따라가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마스크를 썼지만 호흡이 어렵지 않다. 아내 반걸음 뒤에서 같은 속도로 함께 달린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분수대가 옆에 보이는데, 이십 분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멈춰있던 분수가 뿜어지며 물기둥은 하늘로 는다. 볏짚 틈 사이와 나뭇가지에 새순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오 킬로를 다 달렸다며 아내가 멈춘다. 아내의 고운 등에 내 손이 닿고 둘은 호흡을 조절한다. 대지도 함께 숨을 쉰다. 한숨은 모두 사라졌고 긴 숨과 큰 호흡으로 봄을 들이마신다.



그래, 봄은 지금이다. 여기가 봄이고,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가 봄이었다.


결국, 봄은 달력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금 추워서 몸이 움츠러들어도 스스로 봄이라고 생각하면 새봄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수요일이 누군가에게는 봄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계속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봄을 좋아하는 사람이 봄과 오래 하고 싶다면 그리고 아직 봄을 찾지 못했다면 스스로 매일 매 순간 봄이라고 다짐하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늘 봄을 생각하면 된다. 늘봄 유정처럼.



* 이전 글 : 봄과 어울리는 작가님 작품입니다.


* 새롭게 참여한 보리작가님 글입니다.


* 이번에 함께한 해룬 작가님 글과 웹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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