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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랑해도 돼요

오독. 오독.

by 백안


연습실 한구석에서, 아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춤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 춤은 내 몸에 새겨진 이야기야. 내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이 이 몸에 남아 있어."

그리고 멀리,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우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감쌌다. 흉터와 붉게 부풀어 오른 자국들을 따라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가, 크게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 선택이었고, 나는 이 몸을 사랑할 거야. 내 이야기가 여기 새겨져 있으니까."





밤은 깊었지만, 연습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바닥에는 희미하게 닳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은 그녀의 움직임을 고요히 반사하고 있었다. 아이는 거울 앞에 서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공기. 그러나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녀가 이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틀지 않았다. 대신, 기억 속 리듬을 더듬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발끝에서 시작된 흐름이 무릎을 타고 허리까지 번져 나갔다. 익숙한 동작이었지만, 근육은 무겁게 느껴졌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피로가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였다. 춤을 멈추지 않는 한, 그녀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테니까.


"춤은 이제..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거울 너머의 그녀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 춤을 추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이 짜릿했던 그 순간. 몸을 움직이며 시원하게 땀을 흘렸던 그 순간에는 어떤 힘듬도 잊을 수 있었던 짜릿했던 순간들. 비워질 연습실과 함께 그녀는 '찬란했던 과거를 같이 놓아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자신의 전성기라 기억되었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자신감이 넘쳤던 것만 같다. 괜히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아본다. 어느새 과거를 시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울 표면이 불투명하게 흐려졌다. 그녀의 숨결이 서린 흔적이 빛을 머금으며 가늘게 번져 나갔다.

마치 춤의 여운처럼, 그녀의 과거의 잔상이 거울 위에 한순간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숨결이 만든 연습실 거울 속 성에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그녀는 이제 거울을 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조용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을 틀지 않았다. 대신, 기억 속 리듬을 더듬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발끝에서 시작된 흐름이 무릎을 타고 허리까지 번져 나갔다. 익숙한 동작이었지만, 근육은 무겁게 느껴졌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피로가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늘 그녀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처럼 탄력적이고 파워풀한 동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였다.
춤을 멈추지 않는 한, 그녀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번에는 누구의 박수도, 누구의 시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 그녀의 발끝에서 피어나는 감정이 온전히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 춤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10년 전 처음 무대에 올랐던 그 순간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그녀는 더 깊고 진실된 춤을 추고 있었다. 관절마다 쌓인 피로도, 남겨진 상처들도, 그녀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모든 흔적들이 그녀를 더욱 단단하고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연습실 한구석에서, 아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춤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 춤은 내 몸에 새겨진 이야기야. 내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이 이 몸에 남아 있어."





아이는 자신의 몸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긴 시간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을 품에 안듯이. 조용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 아이는 깨달았다.


'이 몸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수많은 무대를 지나며 환호 속에 서 있던 날들과 고독 속에 머물던 순간들, 때로는 격렬한 춤사위에 흔들리고 때로는 쉼 없는 음악 속에서 버텨야 했지만, 언제나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온몸에 새겨진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


이것이 없었다면, 그 어떤 무대도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다는 말에 흔들렸던 날들도 있었고,
통증과 피로 속에서 무너질 것 같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이 감각을, 이 무게를, 그녀처럼 무대 위에서 살아온 크루원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도 분명 수없이 스스로를 의심했고,
통증 속에서 흔들렸으며,
사랑하는 춤을 위해 끝없이 몸을 단련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호흡하며,
한 동작, 한 걸음, 한 순간에 온 마음을 담아
무대 위에서 서로의 리듬을 맞춰왔다.

그 찬란한 호흡이 서로의 몸속에 스며들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계속 함께 숨 쉬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깨달았다.


그 무엇도 그녀들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일 것이고, 늘 아름답게 빛날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들은 떨어져 있어도,

자신들이 만들어갈 ‘숨’이라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그 빛이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스스로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녀의 가장 빛나는 무대의상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조명 하나 없어도, 그녀는 그 자체로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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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멀리,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우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감쌌다. 흉터와 붉게 부풀어 오른 자국들을 따라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가, 크게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숨을 골랐다.
흉터와 상처로 가득한 몸이었지만, 그는 이제 춤을 배우며 자신의 몸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건 내 선택이었고, 나는 이 몸을 사랑할 거야. 내 이야기가 여기 새겨져 있으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마주 본다. 곧, 그는 헤드폰을 찾아 귀에 꽂았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의 몸은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거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며, 부드럽지만 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익숙한 동작들 사이로, 그는 자신을 향해온 공격적인 평가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그를 쓰러뜨리려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춤은 그에게 자유였다. 춤출 때만큼은 몸이 가진 모든 흔적조차도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상처는 더 이상 그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에 이야기를 더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춤췄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존재와 즐거움을 더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우혁은 더 이상 춤을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지 않고, 세상이 자신을 정죄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불친절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춤을 추기로.


힘 있고 거친 비트 위에서 그의 몸은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손끝 하나까지 리듬을 타며,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이 되고 있었다.


"그래..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게 나야. 이제 뛰지 않고 걸어도 괜찮아.. 우혁아. 이 춤이 나야."



아이와 우혁. 두 사람의 몸은 각자가 선택한 삶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흉터는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사랑의 흔적이었다. 우혁은 미소를 지으며 박자를 따라 발을 굴렀다. 이제는 평가와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춤추며 즐거워하는 자신을 바라보기로.


우혁은 이제는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내면 속 어둠을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어둠은 빛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을 허용해 온 것은, 우혁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닫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어둠은 이제 그를 가로막는 벽도, 그가 부수어야 할 장벽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든 자신의 마음속 방에 불을 켜 어둠을 밝히면 되는 것이었다.

그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에게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우혁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어둠을 의식하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세상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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