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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Mar 10. 2024

최후의 목격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어느 순간 스스로가 더 이상 그저 꿈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멀게만 느꼈던 생의 마지막에 대해 때때로 고민하다 보니 간호사로 일하면서 스쳐갔던 수많은 생명들이 떠올랐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시점엔 결국  맞닥뜨리게 되는 환자의 사망, expire. 누군가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느낀 감정들을 공유할까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병원은 굉장히 오묘한 장소입니다. 생명이 처음 눈을 뜨기도 (분만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도 (분만실 외 기타 병동 등) 하는 곳이니까요. 개인적으로 분만실에서 근무한 경험은 없기에 기쁨보다는 슬픔이 깃든 곳에서 일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사망선고를 내리면, 그 이후부터 고인을 보내드릴 직접적인 준비는 간호사가 대부분 담당하게 됩니다. 고인이 병동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간호는 계속되는데 이를 post-mortem care라고 부릅니다. Post-mortem care에는 신체에 부착되어 있던 주사 바늘 및 여러 의료 장치의 제거와 같은 정리, 그리고 깨끗하고 햐안 천으로 전신을 조심스럽게 여며 영안실로 보내드릴 준비가 포함됩니다. (종교적인 특색이 강한 병원에서는 고인을 위해 간호사들이 기도를 해드리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간호 기록을 남기면 간호는 끝이 납니다. 고인이 영안실로 떠난 뒤, 텅 비어버린 침상을 보면 ‘인생이 이렇게나 무상한 것인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요.

 

무연고자

병동에 상주하는 사람은 간호사이다 보니,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것도 간호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담당 의사와 가족에게 연락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기회를 마련하는 등 마지막까지 환자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담당했던 환자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어렵게 연락이 닿은 환자의 법적 가족이 전화 너머로 차갑게 말했습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분입니다.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환자분은 병원 침대 위에서 손잡아주는 이 하나 없이 쓸쓸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가족이 시신 인계를 거부하였기에 결국 무연고자로 원내 장례식장에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일하며 본 경우에는 아예 가족과 연락조차 되지 않는 환자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케이스가 있는데요. 긴 노숙 생활을 이어가다 약물 및 알코올 중독의 병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던 30대의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그 환자의 심전도가 일자를 그리던 순간에 곁에 있던 사람은 담당 의사 그리고 담당 간호사였던 저 이렇게 둘 뿐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 역시도 그 환자분의 나이가 되었고, 거울에 비친 혈혈단신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지’ 때때로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아름다운 뒷모습

모두가 환자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드렸던 날도 있었습니다. 뇌사 판정을 받으셨던 환자의 가족이 환자의 장기기증을 결정하여,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환자가 수술실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병실에서부터 병동 밖으로 이송되는 내내 한 사람의 존엄성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숭고한 결정에 대해 병동 내 직원들이 모두 마중 나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실루엣은 마치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어느 아름다운 이가 사뿐사뿐 걸어가는 뒷모습과 같았고, 이 신비로운 경험은 의료인로서 일하며 생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고자 사유하게 된 감명 깊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그녀는 생명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Liam Pozz on Unsplash)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 나는

학생간호사 실습 시절에 처음 접한 눈앞의 'expire’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했기에 결국엔 서서히 적응하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과도한 업무량에 치여 환자의 ‘죽음’마저도 처리해야 할 업무로 인지하고 있는 스스로의 비인간적임에 깊이 실망했고, 그 이후부터는 적극적으로 그와 같은 자세를 경계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등 인륜지대사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흔치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만, 오늘의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생명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수호하는 의료인 그리고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감히 덧붙이자면 간호사의 업무 scope와 load가 명확히 그리고 적절히 조정되어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존중과 애도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의료환경으로 변모해나갔으면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간호사라면 이런 어려운 주제에 대해 고민해 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Eli Solit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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