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림책 ㅣ 가만히 들어주었어

by 핀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후드티의 지퍼를 올리며 남편이 묻는다. 외출 준비를 하는 내내 말없이 조용하더니, 온통 그 생각뿐이었나보다. 오늘 남편은 소아암을 앓고 있는 3살 배기 아들의 아빠를 만난다. 아들에게 겨우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깔깔 웃으며 뛰어다니는 5살 딸을 키우는 아빠라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나도 애써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비슷한 일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그 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눈물만 계속 나. 뭐라고 위로를 해 주지?" 아마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웠나 보다. 그때까지도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소주만 들이켠 것이 분명했다. 생각 끝에 위로가 될 만한 말들을 열심히 적어 보냈다. 하지만 곧바로 다 지워야 했다. 순간, 내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목이 메고 눈앞이 어른거렸다. "도저히 아무 말도 위로가 안돼." 남편은 친구와 마주 보고 앉아서 펑펑 울다가, 웃기고 시답잖은 이야기만 실컷 하고 왔다고 했다.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나 솔직한 이야기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자 할 때 말문이 막히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마음을 담지 않고 흔한 레퍼토리의 위로 문구를 던지는 것은 쉽지만 아끼는 사람의 슬픔과 절망을 어떻게든 애써 덜어주려는 노력은 결코 말로 술술 나오지 않는다. 똑같은 경험,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딱 한 사람뿐이니, 섣부른 위로와 판단은 오히려 칼이 되어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야, 별 거 아냐. 더한 사람들도 있어.” “잊어버리고 여행을 가. 계속 생각하면 뭐해." "안타깝다, 한 번 더 잘 확인하지." 가볍게 스친 긁힘 정도일 뿐인데 유난을 떤다는 질책, 아무렇게나 던져보는 이런저런 해결책, 결국에는 너의 잘못도 있지 않냐는 합리적인 이성을 겸비한 판단. 모두 위로의 옷을 입은 폭력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이 위로를 한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일일까.




그림책 코리 도어펠드의 '가만히 들어주었어.'는 위로가 결코 "힘내!"라는 한 마디로 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테일러는 블록으로 정말 멋지고 특별한 작품을 만들고 뿌듯해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들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와르르르르 무너지고 만다. 테일러의 모습을 본 동물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방안을 내놓는다. 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라는 닭, 소리를 질러보라는 곰, 고쳐줄 테니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해보라는 코끼리, 숨어보라는 타조, 골이 나니 다른 친구들 것을 무너뜨리자는 뱀까지. 하지만 테일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때, 조용히 천천히 토끼가 테일러 옆으로 다가온다. 둘은 한동안 그저 앉아있는다. 얼마 후, 테일러는 토끼에게 말한다. "나랑 같이 있어줄래?" 테일러가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소리를 지르고, 웃는 동안 토끼는 가만히 들어준다. 때가 되자, 테일러는 웃으며 토끼에게 말한다. "나 다시 만들어볼까?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정말 멋지겠지?"


20191114_185422.jpg <가만히 들어주었어> 코리 도어펠드 글, 그림 신혜은 옮김 / 북뱅크


토끼는 다른 동물들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 책날개에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때'에, 그 사람의 '방식'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적혀있다. 그 사람의 '때'란 무엇일까.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여주인공은 가족처럼 살고 있는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몇 년째 그들의 위로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대뜸 말한다. "나 힘들어. 안아 줘." 그제야 여주인공은 친구들의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친구들은 말한다. "기다렸어." 그 사람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때로는 나 대신 실컷 쌍욕을 날려주는 사람한테서 위로받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한테서 위로받기도 한다. 테일러처럼 그저 가만히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에게서 위로받기도 한다.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위로를 받는 사람의 '때'에 맞지 않는, '방식'에 맞지 않는 위로는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한다.


영어에 'If I were in your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꼬마 여자 아이가 엄마의 하이힐 속에 자신의 작은 두 발을 넣고 엄마처럼 멋진 어른이 된 것처럼 상상하듯, 신발은 곧 존재를 의미한다. 결국, 위로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8살 때 형을 잃었고, 그때 실제로 토끼가 위로가 되어 주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위로가 절실한 마음과 위로가 되지 않는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위로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공감하고, 공감을 받으며 살고 싶다. 오늘도 내가 쌍욕이 가득한 카톡을 날리고, 밤 12시에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아도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남편 옆에 앉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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