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속에서 찾는 희망
2021년, 수능을 2주 앞두고 나는 코로나 격리소에 들어갔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었던 나는 가정학습(코로나로 학업에 문제가 있을 것을 우려해 일시적으로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신청서)을 내고 3주째 집에만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온 가족이 전국 격리소로 뿔뿔이 흩어졌고 나 또한 충청도까지 격리 되었다. 구급차에 연행되다시피 실려 바이러스실에서나 입을 만한 비닐 옷을 주며 입으라고 했다. 수능까지는 약 2주. 멘탈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공부가 되지않았다. "격리소에 들어가면 공부할 수 있나요?" 물으니 책 반입은 가능하나 격리해제 후에는 다 버리고 나오라는 얘기뿐이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벌써 인생이 무너진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으로 격리소에 입소했다. 격리소에 도착을 하고 짐을 풀었다. 조금 뒤 한 언니와 50대 아주머니께서 들어 오셨다. 우리는 세명이서 방을 배정 받았고 방이 2개 뿐이라 언니와 나는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언니와 일주일간 같은 방에서 격리를 하며 무수히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생각이 무척 깊은 언니였다. 얘기를 하며 많은 것을 배우며 진심 가득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언니 덕분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격리가 끝나고 수능날이 왔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난 수능을 망쳤다. 멘탈도 불안했을뿐더러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했다. 재수를 고민했었지만 1년동안 다시 공부를 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 청춘이 너무 아까웠다. 복잡한 마음으로 나는 곧바로 알바를 구했다. 현실은 막막할지라도 내 인생에 발전이 있어야 했기에. 일단 일을 하며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졸업을 한 뒤 알바를 세개씩 뛰었고, 틈틈이 한국사능력시험과 같은 자격증 준비에 몰두했다.
어느날 열심히 알바를 하며 살고있던 내게 오랜만에 격리소에서 만난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여름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같이 가보는 거 어때?" 선뜻 물은 언니의 물음에 나는 무척 고민이 되었다.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고민과 이대로 살아가는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왔던 시기였다. 어딘가 떠나고는 싶었지만 지금까지 모아둔 큰 돈을 써가면서까지 가야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중동국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긴 시간 나는 고민했다. 언니의 지속적인 권유로 나는 결국 중동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해외로 가는 것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이스라엘'텔아비브'공항에 도착했다. 덥고 습했지만 동남아 느낌과는 또 달랐다. 걱정했던 문제들은 어느새 잊혀지고 앞으로 이 땅에서 생길 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19살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여행은 내 19년 인생에 변환점이 되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