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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y 16. 2019

놀고 놀고 또 놀고

너무 많이 놀아서 입에 병이 생길 정도로 놀게 해주겠다

나의 회사생활로 인해 돌이 갓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다녔던 첫째는

등원은 아빠와, 하원은 시터 이모님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으나

동생이 태어난 덕분에 다섯 살 가을부터는 나와 등 하원을 하게 되었다.


출근시간에 쫓겨 모든 요구사항을 단칼에 거절했던 아빠와 달리

엄마인 나는 그동안 함께해주지 못했던 것의 미안함을 담아 대체로 많은 것을 허용해주었다.

원래 등원했던 8시에 가면 친구들이 없으니 늦게 가겠다고 선언한 그 날부터 등원은 천천히,

하원 후에는 놀이터에 가는 것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마침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다녔던 한 살 아래 친구 2명이

동네 놀이터에 자주 와서 그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다.

자연스레 아이 친구 엄마들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가면 밥도 더 잘 먹고 잠도 일찍 잤다.

다른 엄마들이 챙겨 온 간식을 몇 번 얻어먹고 난 뒤 나도 물과 간식을 좀 더 넉넉히 챙기게 되었다.

내가 준비해온 간식을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아이를 보면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평일 오후의 놀이터를 찬찬히 돌아보니,

놀이터 옆 정자에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혹 놀이터까지 데리러 온 학원 차가 보였고 (대로변과 붙어있는 어린이 공원이라 가능하다)

아이들은 원래 친구였든 아니든 같이 잡기 놀이를 하거나 개미를 찾는다며 땅을 파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이제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오면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다.


평소 내가 회사에 있었던 시간에 정규 기관 생활 외 놀이 시간은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우리 아이가 여기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좀 짠하기도 했다.

그간 못 놀았던 회한을 풀기라도 하듯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도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형이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둘째는 아기띠에 안겨있거나 유모차에 타서 낮잠을 자기도 했고, 옹알이를 하기도 했다.

(아직 어린 둘째는 장시간 외출로 콧물을 달고 살게 되었다. 둘째 정말 미안 흑흑)

나뭇가지로 땅만 파도 재밌었던 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서 실컷 놀게 두었던 시간이었다.


놀이터에 매일 나가서 놀지만, 같은 반 친구들과도 놀고 싶었던 첫째는

어느 날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 : “엄마, 나 우리 반 ㅇㅇ랑 같이 이번 주말에 키즈카페 가기로 했어”

나 : “으응?? 이번 주말에? 둘이서 약속을 했어? 그 애 엄마도 알아?”

첫째 : “아니 모를걸? 엄마가 전화해서 같이 키즈카페 가자고 얘기해봐”

나 : -_-;;;


몇 해 째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등 하원을 내가 하지 않았으니

오며 가며 마주친 엄마도 없고 당연히 연락처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직장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아이들이 아니라서

어린이집 공식 행사 외에는 거의 만나기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같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한 친구의 엄마가 같은 회사 직원 분이라 연락처를 알 수 있어

조심스레 연락을 드려 주말의 어느 날 키즈카페에 가기로 약속 성공!


가기로 한 날 전 날밤부터 들뜬 첫째는 평소보다 잠도 일찍 자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어서 나가자고 채비를 서둘렀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친구를 보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키즈카페에서 2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친구와 재밌게 놀았다.

물론 나는 그 시간 동안 키즈카페 한편에 마련된 카페에서

아이 친구 엄마이자 회사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회사라고 해도 친한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된 화제는 아이들 교육 관련이었다.

전혀 몰랐는데 같은 반 친구들 중 몇 명이 영어 유치원 오후반을 다닌다고 했다.

어린이집 근처에 있는 유명 영어 유치원의 수업 패턴이나 가격이 어떤지,

지금 대기하면 언제쯤 들어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 등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 교육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키즈카페에서 전해 들은 엄마들의 정보 덕분에

근처에 어느 학원이 괜찮은지, 다른 아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등을 새롭게 알았다.

왜 엄마들도 네트워킹을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나가 놀기를 꼬박 한 달,

환절기인 데다 꽃가루 철이 찾아오면서 놀이터 생활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원래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기는 했지만 작년까지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놀이터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증세가 심해져서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은 충혈되었으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입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보니, 혀 밑에 하얗게 궤양이 생긴 것이 아닌가!

부랴부랴 병원에 가니 꽃가루가 심한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가급적 바깥에서 안 노는 게 좋고,

입에 생긴 병은 너무 피곤해서 생긴 것이니 잘 먹고 푹 쉬게 해주라고 했다.


여섯 살 인생에서 집과 어린이집만을 오가던 아이에게

회사에 가지 않는 엄마는 놀이터에도 같이 가주고, 친구와 키즈카페에도 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얼마나 신나는 요즘일까 싶다.

한 동안 놀이터며 키즈카페를 쫓아다니다 보니

아이의 사회생활을 위해 엄마도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놀이터에 가기 위해 적당한 간식도 챙겨야 하고, 엄마들과 자연스러운 관계 유지를 위해 대화도 해야 하고,

키즈카페 같은 원외활동(?)을 기획하기 위해서 친구 엄마에게 연락해서 스케줄을 잡아야 하고(비록 어려운 관계라도 아이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거기에 저녁식사 준비까지 해야 하니 참으로 바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육아를 위해 휴직을 선택했지만 어째 둘째보다 첫째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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