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2 토요일 / 현정의 전시 [ a r o u n d ] 오프닝
생각다방 산책극장 / 대담
처음 ‘전시’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떠올랐던 때?
이번에 두 달 반 정도 여행을 했는데 지금의 방식으로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때는 이 여행의 마지막 즈음 들렀던 에딘버러에서 였던 것 같아요. 쿠바 갔을 때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고 그 그림들이 모였어요. 그리고 사실 이번 여행 떠나면서 뭔가 나의 스무 살부터 10년을 (확 정리하고 없앨 순 없지만) 버릴 수 있는 건 버리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하나의 방법으로 전시가 좋지 않을까? 그럼 내가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전시를 떠올린 이후로 빠른 시간 안에 준비 하긴 했지만, 아마 요번 일주일동안 가장 집중해서 준비를 했는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셨잖아요? (웃음) 왜 그러셨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다 같이 웃음)
(웃음) 정말 이 불편한 자리라니… 그림, 전시, 사진 등 오브제의 전시들이 많은데, 나의 전시는 뭐라고 정의를 내리면 좋을지 너무 불명확했어요. 사진도 있고 그림도 있고 영상도 있고, 근데 그 불명확한 게 내가 10년 동안 해 왔던 건거에요. 이것도 저것도 다 하고 싶어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쓰기도 하고. 그리고 그걸 블로그라는 곳에 기록해 놓기도 하고요. 너무 산발적이기 때문에 나도 헤매다가 ‘그냥 다 하자’라고 마음먹었어요. 그동안 수집은 너무 잘 해왔기 때문에 그걸 정리만 해내면 되는데 ‘어떻게 정리를 하지?’ 막상 시작을 하니까 너무 막막한 거에요. 내가 이렇게 문어발이었구나(웃음) 근데 뭐 하나 줄일 수도 없고. 하나의 장르로 모여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정리해내는데 되게 힘들었어요. 그리고 약간 우울함이라는 게 중간에 계속 있었어요. 그동안 살아오면서도 중간 중간 계속 우울했던 시기들은 있었고 그걸 내가 어떻게 벗어났었는지를 가끔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가장, 뭔지 알 수 없는, 정말 우울한 게 뭘까? 지금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슬픔은 원인이 명확한데 우울은 너무 많은 이유들 때문에 찾아오는 거라서. 전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이 했던 것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래도 이번에는 견디고 한번 해내자고 힘을 내보았어요. 그리고 오늘 10프로 남기고 다 준비 해버렸고 그래서 되게 좋아요.
그거 다음 질문이었는데. (다 같이 웃음)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묻고 싶었는데 (웃음)
나를 위해서 그냥 쓰고 기록하고 모으고 찍고 그리고 했던 것과 다르게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했을 때는 나의 전시를 스스로 설명해내야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1. 내가 어떤 작업을 해야 되고 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그것도 되게 새로웠어요.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독립이나 자립이나 생존이나 그리고 일상에서의 예술이라는 거. 지난 10년 동안 예술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함에서 시작해가지고 일상으로 가져오는데 오래 걸렸어요. 지금도 예술, 예술가, 작가 이러면 뭔가 거창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지만, 그렇게 일상으로 끌어내리는데 시간이 이만큼 지났어요. 반대로 이번엔 시간을 들여 끌어 올려보자고 생각 했어요. 어쨌든 ‘일상을 전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시장을 두 공간으로 나눴어요. 하나는 내가 항상 지내는 방이고 하나는 내가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그곳에 넣고 음악이든 뭐든 전부 짜여진, 거짓일 수도 있지만 더 진실일 수도 있는 다락방. 두 곳을 같이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람객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나도 궁금하지만 일단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준비를 했던 전시에요.
살짝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도 같아요. 뭐 단순하게 이런 거 하다보면 다음에 이거 하고 싶다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 텐데요. 또 다른 생각이 있나요?
전시 이후? 이번에 한 일주일 정도 자려고 누우면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이 (다 같이 웃음) 계속 생각 나가지고 (웃음) 계속 어쨌든 적어두긴 하는데 다 하진 못하겠고… 그래도 그 생각은 잘 가지고 있다가 싹을 틔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한마디씩 보태주는 의견들이 많아요. 그것도 다 기록해서 다시 보니 이것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이 다음번에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다리 정도가 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요. [around] 2탄 3탄이 또 있을 수 있고 그게 꼭 내가 아니어도 다른 이들이 이어서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나의 일상을 전시했지만 다음엔 친구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이어서 그 다음을 할 수 도 있고. 이 이름을 가지고 이 장소 저 장소에서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이번 전시를 하는 동안에 생긴 사진, 친구들의 글 이런 걸 모아서 전시 이후 며칠 정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음. 전시를 전시하다.
네 그런 거. 그리고는 또 생각이 없어요. 돈을 어떻게 벌지? 이거는 지금 시점에서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기로 했고. 일단 이 집에 머물면서 손으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 모아가는 시간을 당분간 가지려고 해요.
술도 끊고. 주류계의 큰 별이 지고 (다 같이 웃음) 나가지 않고 머물겠다고 말하고. 엄청난 변화죠.
나중에 저 곳 다락방에서 다른 작가들이 전시를 하는 것도 좋겠어요. 입장료 협의가 된다면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후원할 수도 있고. 전시를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자기 생활수입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입장료를 자기가 꼭 가져갈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협의가 되면 여기 유지비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시겠어요?
네 저는 충분히 하고 싶습니다.
전시를 한다면 굉장히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제가 라이프 사진전을 갔다가 거기 한 사진작가가 그런 말을 했더라구요. ‘사진이란 건 참 신기하다 내가 피사체에 전념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카메라가 알아서 한다.’ 그래서 요즘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는 우리 전념하자. 그런 모드?
전념이라는 단어로 얘길 나눈 이후에 제가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붙여놨던 포스트잇이 있었어요. 거기에 ‘행복의 본질이란 하고 있는 일과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일에 전념하는 것.’이렇게 나와 있는거에요. 그래서 아 재밌다! 생각했죠.
네 동시성?! (웃음)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이야기 하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까요?
과거를 돌아보는 게 어땠는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자주 하긴 했던 것 같아요. 나는 현재를 살겠다! 현재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어제는 다 사라지고 내일은 없고 어차피 기억도 못하고 그랬지만) 내가 기록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뒤적이고 뭔가 찾아내곤 했는데, 그 일을 이번에는 좀 더 큰 규모로 한 거죠. 한번 그냥 돌아보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다시 훑어보고 재배치하고. 그리고 나니 이제는 이걸 놓을 수 있겠다는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이전에 엉망진창으로 그냥 쌓여만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못 버리겠고 아무것도 못하겠었는데 그랬는데. 그걸 다시 진짜 하나하나 저 티켓들을 (다 같이 웃음) 하나 하나 다 보면서 아 내가 이런 영화를 봤고 어디를 갔었고 그랬구나. 그게 딱 끝나고 나니까 이제 몽땅 다 버려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았던 걸까?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복잡하게 엉킨 상태를 잘라 정갈한 모습으로 담아내거나 무작정 쏟아내는 것을 넘어 오늘 풀어내고 내일 여미는 행위를 지속할 때 다져지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칠산동에서 장소화를 이루고 있
던 시절, 다락방에서 열린 전시회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다락방에 풀어놓은 ‘히요’의 기록은 ‘보따리를 풀고, 보자기로 감싸는’ 행위의 오랜 이력처럼 보였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둔 영화표에서부터 그때 그 순간을 기록한 스냅 사진에 이르기까지, 걸었던 곳과 만났던 사람들을 ‘히요’는 손길과 발길의 깜냥을 통해 색색의 실로 엮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색색의 실로 엮은 기억을 보관해두는 ‘다락방’이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그런 다락방이 있어야 한다. 보따리를 싸서 가볍게 떠나고 다른 곳에서 풀어낸 뒤 보자기로 다시 감싸고 여미어 돌아오는 여정의 반복. 풀고 여미는 일을 반복하면서 다져진 (생활) 근육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곳과 저곳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기도 했을 것이다.
「보자기를 풀고 보자기로 감싸며: 풀고 여밈의 글쓰기」 짧은 에세이 중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