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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음까지 시렸던 겨울 출근길

독일에서의 첫겨울, 우리가 버텨낸 시간들

by Clara

독일에 도착한 건 9월 30일이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고, 아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밤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향했죠.


1. 새로운 시작, 텅 빈 집에서

유럽에서 살게 된다는 설렘이 얼마나 컸던지,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뉘른베르크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정말 말 그대로 ‘빈 집’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국제 이사를 하게 되면 짐을 컨테이너에 실어 해상으로 보내는데, 보통 6주에서 길게는 16주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통관에 걸리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해외 취업이나 국가 간 이동을 앞둔 분들은, 회사에 국제 이사 비용 지원을 요청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희는 다행히 남편 부서에서 비용을 상당수 지원해 주어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2. 보증금과 빠듯한 예산, 야외 가구로 시작한 살림

독일에 도착했을 때 저희는 정말 ‘빠듯’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싱가포르 달러도 거의 가져오지 않았고, 남편이 먼저 와서 모아둔 월급만으로 생활해야 했어요.

독일의 월세 계약은 보증금이 보통 3개월치 월세인데, 이 금액을 지불하고 나니 가구를 장만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처음 몇 주 동안은 이전 임차인이 남겨준 발코니용 야외 가구를 집 안으로 들여와 식탁과 의자로 사용했답니다.

자동차 구매도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안멜둥(거주지 등록)’ 절차에 시간이 걸려 결국 차는 거의 6개월이 지나서야 살 수 있었습니다.

tempImageTdHigC.heic 짐이 올 때까지 사용한 발코니 전용 의자와 테이블이에요. 눈이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

3. 자동차 없는 출근길, 작은 모험처럼

자동차가 없으니 출근길은 마치 작은 모험 같았습니다. 저희가 살던 곳은 독일의 남부 도시,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오페라하우스역. 그곳에서 독일 지하철인 우반을 타고 중앙역까지 가고, 다시 기차로 갈아타 에어랑겐역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버스를 탔고, 맞지 않으면 20분을 걸어 회사로 향했습니다.

시어머니가 함께 와주신 덕분에 처음 몇 달은 아이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인의 무비자 체류 기간은 90일뿐이라, 시어머니는 12월 말 싱가포르로 돌아가셔야 했어요. 어렵게 유치원을 구했지만, 또 다른 문제는 그 유치원이 다른 기차역 근처였다는 것.

tempImageGSUyj3.heic 이른 새벽, 독일의 지하철 우반을 기다리며.. 뉘른베르크 오페라하우스역이 텅 비어 있었지요.

4. 새벽 5시 반의 등원길과 영하 11도의 숲길

아이 등원을 위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유모차를 밀고 지하철로 이동한 뒤, 6시 40분 중앙역에서 기차로 갈아타 중간역에 내려 다시 15분을 걸어 유치원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아이를 7시 15분까지 맡기고 나면 다시 숲길을 20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죠. 버스를 놓치면 추운 바람 속에서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직 어둑한 숲길 끝에서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순간, 위잉— 하고 버스가 떠나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남편이 미국 출장 중이던 어느 날, 모든 등·하원을 혼자 맡아야 했는데, 영하 11도의 날씨 속에서 달리느라 회사에 신고 갈 부츠가 진흙투성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갔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는 날도 있었죠.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그 버스는 가끔 연착되거나, 아예 일찍 지나가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요.

그렇게 한겨울 아침, 정류장에서 멈춰 선 채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tempImagegycAub.heic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벌써 8년 전이라 전광판이 아날로그식이네요. 최근 이 전광판은 디지털로 바뀌었답니다.

5. 지나고 보니, 다 추억

일주일 출장을 다녀온 남편을 보자마자 결국 엉엉 울고 말았어요.
그때는 너무 버거웠지만, 지금은 어느새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9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지나치게 컸던 것 같아요. 계약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요. 자동차를 사기 전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을 매일 버텨야 했습니다. 왕복 4시간. 그것도 재택이 없던 코로나 이전의 시절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은 우리 세 가족 공동체가 참 단단해지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tempImageXCUGUQ.heic 집에 오는 유모차에서 늘 잠들던 아들,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릴까 덮개에 꽁꽁 싸서 데리고 다녔었어요. 지금 봐도 짠한 마음이.. 드네요.

여러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가장 힘들었던 점,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다음 화에서는 제가 경험했던 독일의 병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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