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속마음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이구 Jul 21. 2024

비겁하고 부끄러운 생각

2024-07

부끄럽게도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 믿는다. 오직 그 믿음 안에서 나는 비겁하게 안심할 수 있다.


심란한 얼굴로 노트북으로 보고 있는 중년. 무더운 여름의 거리를 하하 호호 웃으며 걸어가는 학생들. 분주하게 음료를 제조하는 파트타이머. 과연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결코 알아낼 수 없다. 과연 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간신히 상념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의 결론은 ‘저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는 추론이다.


내가 상대를 바라보듯 상대가 나를 바라본다는 옛 현인의 지혜를 빌려 얻어낸 추론이다.


나만 이런 사람은 아니었으면… 나만 이런 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불안하며, 가짜웃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길; 나처럼 눈치를 보며, 그 누구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지 못하길…


축축하고 역한 이 믿음 속에서 나는 비겁하게 안심할 수 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이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오직 자신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우리 모두 결국엔 같은 결함에 고통받고 저항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이 문장까지도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펜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눈을 다시 뜬다. 추악한 추상으로 오염된 종이를 바라본다. 노트를 덮는다.




이전 04화 평범한 사람의 꿈에 대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