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달래기
펜촉이 거친 질감의 종이 위를 지나간다. 나를 꺼낸다. 내 생각과 감정이 문장의 형태로 재탄생한다.
지우개를 꺼낸다. 종이 위의 문장을 지운다. 내 생각과 감정이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펜과 종이 앞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내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 끝마디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다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의식의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것이라는 점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데 무의식에 것들은 질서가 없고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으며 대게 불쾌하고 우울하며 불안하기 때문이다.
칼 융은 우리 모두에게 그림자 같은 것이 있어 그곳에 자신의 치부를 숨겨둔다고 한다. 글쓰기는 그 치부를 꺼내는 행위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의식적 행동으로는 꺼낼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문장이라는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자신의 글 앞에서는 겁쟁이가 된다.
이따금 무언가에 홀린 듯이 문장이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올 때 나는 그것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해야 한다. 무의식의 것을 의식의 세계로 꺼내놓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저승의 괴물을 이승에 풀어놓아선 안된다.
하지만 그들은 성급한 대기자처럼 딱 자신까지만 들여보내달라고 강하게 어필한다.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는 강아치처럼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약해진다. 펜을 들어 딱 한 문장만 더 써본다. 딱 여기까지만. 그래 너까지만. 사정이 딱하니깐 너까지만. 집요한 대기자의 응석과 너그러운 문지기의 허용이 오간다.
나는 미처 나오지 못한 말과 생각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들을 노곤하게 만든다. 그들을 잠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