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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Sep 23. 2020

걷는 인간 2 - 철길숲

2020.9.23.수

오늘은 구름과 바람이 많은 날이다. 자전거를 타기가 어려울듯 싶어서 평소 한 번 걸어 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우선 십여 분 자동차를 타고 가서 적당한 곳에 세워두었다. 원래 철도길이었는데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를 걷어내고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만들었다. 시에서 예산을 많이 들여서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이런 일을 하는 것 보면 세금을내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내내 운동을 하지 않았던 표가 대번에 났다. 평소 걷는 건 자신있었는데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걸음이 느려지고 다리가 아프다.

사실 걸어서 갈 목적지가 있었다. 철길숲을 끼고 큰길에 아기옷 매장이 있다. 그곳에 가서 손주 추석빔을 살 참이었다. 자동차로 후딱  다녀버릇해서 걷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제는 집에 박혀있는 친구들 단체톡으로 비행기 사진을 올렸더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난리를 쳤다. 뭐냐고 물으며 하수상한 시절이 좀 지나면 사줄게, 했더니 기내식이 먹고 싶단다. 이삼 년 뒤면 먹을 수 있겠지? 그럼 남미에 가자, 그러자 카톡이 불났다. 그래, 손가락만 움직이는 거 어디든 못가랴, 하며 모두들 웃었다.

이 체력이라면 남미는 커녕 집 뒷산도 못가겠다.


그래도 은근과 끈기로 뭉쳐진 아줌마라 부지런히 걸어서 쇼핑몰에 도착했다. 며느리에게 사진 찍어보내 검사받고 두 벌을 샀다.

비싼 건 저희들이 사입힐테고 나는 어린이집에 갈 때 입을 편한 옷으로 골랐다.


예전에 엄마는 추석이 보름이나 열흘 쯤 앞으로 다가오면 새옷과 운동화를 사주셨다. 안방 다락에 넣어두었는데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다락을 오르내리며 옷을 입어보곤 했다. 드디어 추석이나 설 전날, 엄마는 다락에서 옷을 꺼내주셨는데 그러면 는 새옷과 운동화를 머리맡에 얌전히 놓아두고 잠을 잤다. 자다가 오줌 누러 일어나서도 더듬더듬 새옷과 운동화가 잘 있나 만져보곤 했다.

그랬던 꼬맹이가 딸의 옷도 아니고 손주의 옷을 사다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시간열차는 갑자기 뒤로 돌아서 순식간에 과거의 시간 속으로 내달리는 듯 하다.

그 모든 일들이 엊그제 같기만 하지만 그 사이의 시간은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아득하고 멀다. 엄마, 아버지는 가시고 그 자리에 내 딸과 아들, 손주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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