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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8. 2020

100

2020.10.8.목

<아무튼, 3시> 매거진을 만들고 지난 7월 1일부터 매일 글을 썼다. 3시 언저리에서 하고 있는 나의 일상을 글로 쓰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연결 되는, 그전에 찍어둔 사진을 곁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고, 독서모임도 이끌고, 시조모임에 몸담고 시조도 쓰느라 이것저것 할 일이 있지만 벌써 반환점을 한참 전에 돌았을 나이가 되다보니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긴 했는데 제대로 살았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국화빵틀에서 국화빵을 찍어내듯 그날이 그날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우울했다. 이런 말이 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갈 순 있지만 그 새가 머리에 집을 짓게는 하지 마라' 그랬다. 우울이 나를 잠식하게 버려둘 순 없었다.



내 안에는 낙타가 산다. 그 낙타는 포기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살아오면서 부대끼고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낙타는 몸을 일으킨다. 물을 찾아 가자고 나를 채근한다.

<아무튼, 3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이 100일이 되는 날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매일 글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매일 다이어리에 메모는 하되 매거진에는 한 달에 네댓 번을 올릴 참이었다. 며칠을 쓰다보니 매일 글을 올리게 되었다. 나는 순발력보다 지구력이 강한 쪽이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매일 글을 쓰다보니 같은 날이 한날도 없었다. 매일이 새날이고 다른 날이었다. 철학적 사유에 자주 인용되는, 마치 같은 강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내가 그날이 그날 같다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쓸데없는 것에 걸려 넘어지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글을 쓰는데도 속도가 조금은 붙었다. 물론 이 글을 우선으로 쓰다보니 꼭 써야할 글이 있는데 그 글은 자꾸 뒤로 밀린다. 시조도 두 달동안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나는 멀티 인간은 못되나보다.

그럼에도 <아무튼, 3시>를 일 년 동안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려운 장정이긴 하지만 훗날 내게 기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늦게라도 무얼 시도할 때 결정을 내리는 잣대가 있다. 일 년 뒤, 이 년 뒤, 오 년 뒤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이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일단 시작한다. 독학으로 사진 공부를 하고, 이 년 전 주위에서 모두 말리는데도 자전거타기를 배운 것도 그래서 얻은 결실이다.


글은 제목이 아주 중요하다. 주위에 글을 쓰는 분들을 보면 제목짓기에 많이 고심을 한다. 나는 3시 무렵이 되면 브런치 창을 열고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는 분들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로 시작하라고 한다. 말장난 같지만 이게 진리다. 글쓰기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일단 몇 문장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적당한 제목이 생각이 난다.

특히 시조는 정말 제목이 중요하다. 물론 연시조도 있지만 단시조의 경우 45자 내외인데 제목이 절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3시>에 100 개의 글을 썼으니 제목도 100개일터, 그만큼 제목을 가져오는 훈련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제목은 미리 정해둔 것이다.

여기까지는 오늘이 100번째 <아무튼 3시>에 관한 이야기였고 또다른 '100'이 하나 더 있다.



지난 8월 24일, 아이들 집에 있었는데 며느리가 퇴근을 하면서 작은 케익을 사왔다. 웬 케익이냐고 했더니 며느리가

"오늘 어머님 브런치 구독자가 100명이 되었어요. 같이 축하할려구요." 한다.

속으로 겨우 100명인데?,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100명, 대단하지 않아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한다. 그래, 100명이 있어야 1000명도 있는 거지.

며느리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도 많고 응원도 보낸다. 남편과 아들에겐 얘길 안했지만 며느리에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했더니 간간히 찾아서 읽는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케익을 사고 축하할 생각까지 했다니 기특하다.


오늘 3시에는 두 가지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하루도 삶의 무늬가 같은 날이 없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아라비안나이트>의 세에라자드 왕비가  하루하루 이야기를 이어가서 포악사리아르 왕의 마음을 녹였듯이, 나도 매일 삶의 이야기를 쓰므로서 자주 엄습하는 막연함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사택이어서 비워줘야 하지만 다 낡은 육십년대식 우리 집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남편이 가꾼 코스모스. 게다가 멋진 하늘, 잘 마른 바람. 한 번뿐인 2020년10월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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