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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19. 2020

30년 전 백일장

2020.10.19.월

2020년 가을

계절의 창 가에서

산에 오른다. 새벽안개 피어있는 산에 오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김이 귓가를 맴돌고, 청설모  눈 앞을 어지럽히며 달려가는 산에 오르면 나는 어느 듯 꿈꾸는 자가 된다.


삼십 년 저 너머의 세월 속에 가려져 있는 유년의 뜰로 달려간다.  마당이 넓고 우물이 깊던 그 집, 우물 옆에는 휘어질 듯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서 있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한 그루의 감나무가 물 속에 잠겨있다.
이른 새벽, 밤새 떨어진 감들이 뒷간을 다녀오는 발길에 채이면 나도 모르게 그 감을 한 입 베어물고 떫은 맛이 입안 가득히 퍼지길 기다리곤 했다. 또 학교를 마치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고무줄 놀이에 여념이 던 내 친구들은 여름에도 이가 시리던 그 우물물을 들이키면서 땀을 식히곤 했다.


그 유년 집으로 가면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으신 내 부모님을 만난다. 광복과 6ㆍ25의 폐허의 더미에서 지금의 풍요를 이룩하느라 검약과 성실로 한 생애를 사신 부모님을 가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세대인가.
물질적인 궁핍과 빈약한 문화 속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이 결여된  채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이만큼 반듯하고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몸으로 보여주신 산 교육의 덕이 아닌가.


할아버지, 할머니, 세 명의 삼촌과 우리 사남매, 일가붙이들, 집안일을 도와주던, 나보다 한 살 위였던 '필례'라는 아이까지 북적이던 대가족의 삶이 그곳에 있다.
밤이면 할아버지께 듣던 '유충렬전'은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가. '장화홍련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그 어느 날 밤의 기억들은 여전히 내 가슴의 갈피에 남아있어서 생활이 매마르고 곤고할 때마다 가만히 들춰보면서 새 힘을 얻는다.


전기를 아끼느라 벽에 구멍을 내어 두 방을 밝히도록 설치한 형광등도 생각이 난다.
밤이 깊도록 책을 읽던 오빠와 나는 부모님이 불을 꺼버리면 불빛이 새어나갈새라 조심하며 촛불 아래에서 다시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었다.
그 덕택에 우리 남매는 안경잡이가 되었지만 오빠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고, 나 역시 글을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다.


유년의 뜰을 더듬으며 휘이훠이 산에 오르면 숨은 턱에 차오르고 나는 산 정상에 서 있다.
어둠이 걷히고 세상의 풍경이 허리에 다가오면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야호'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는 오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명의 소리이다.
어깨 위에 쌓인 일상의 먼지가 무겁게느껴지면 나는 으례이 산을 찾는다.
발목을 차오르는 낙엽을 밟으며 산을 내려오는 나는 더 이상 꿈꾸는 자가 아니다. 내가 만난 아버지, 어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다.
세월의 다리를 건너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내 속에 사랑이 넘치도록 고인다.
그 사랑을 저 아래 세상에 있는, 내가 껴안아야 할 남편과 아이들에게 남김없이 주리라. 내 사랑하는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이 가을에, 산을 내려오는 나는 건강한 생활인이 된다.


***그저께 올린 삼십 년 전 백일장에서 장원한 글. 글제가 <계절의 창 가에서>였습니다. 손주가 어린이집을 가서 몇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옮겨보았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간간히 발표한 글들은 파일에 따로 보관 중이었는데 마침 이 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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