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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Nov 04. 2020

커피 내리는 시간

2020.11.4.수

지금 주방엔 커피향 가득하다. 얼마전까지 캡슐 커피를 마시다가 전세계적으로 일 년에 버려지는 캡슐이 수백억 개라는 기사를 보고 다시 커피콩으로 돌아왔다. 깊이 넣어두었던 머신을 꺼내고 커피콩을 인터넷 주문으로 샀다. 하루에 한 번 커피콩을 간다. 향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것조차 바쁘다며 즐기지 못할 때가 잦다.



오전에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어제 무리한 등산 탓인지 다리가 뻐근 했다.

어느새 수북히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용을 쓴 탓일게다.


부인과 쪽으로 검진을 몇 해나 건너 뛰었다. 우리 집에 병원과 친한 사람이 있어서 나는 웬만해선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연식이 제법 되니 제때 검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아직까지는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자궁쪽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나 삼개월 뒤에 한 번 더 보자고 한다. 내일은 가슴 쪽을 볼텐데 별 일 없을 듯하지만 걱정이 된다. 6개월 뒤에 오라는 걸 5년은 지났을 듯 싶다.


병원에서 나와서 단골옷가게에 들러 코트를 구경했다. 나와서 차로 가는데 쇼윈도우 안에 마음에 드는 장의자 발견. 아이들 아파트 전실에 두면 딱 좋을 듯 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잡지에서 본 티 스푼을 사려고 온 백화점을 다 뒤지던 성질은 여전한 것 같다. 쯪쯪!

 


아무일도 없는 그저 그만한 하루가 행복이다. 오늘 하루는 걷기나 자전거를 건너 뛰고 병원에 갔다왔으니 커피를 마시며 빈둥거릴 참이다.

예전에 어린아이였을 때 혹 병원에 갔다온 날이면 신이 났었다. 아프니 엄마도 내 요구를 잘 들어 주었다. 양갱을 사달라거나 소꿉놀이를 새로 사달라고 졸랐다. 만병통치약인 설탕물도 병원에 갔다온 날은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병원에 갔다온 날도 내 일에 열외가 없다. 여전히 장 보고 저녁 준비를 한다. 밥 솥에 쌀을 씻어 안쳐 놓고 글을 쓰고 있자니  어느새 밥이 다 되었단다.


또 하루가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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