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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Nov 11. 2020

후생의 꿈을 이생에서 이룬 친구를 위하여

2020.11.11.수

추상화를 그리는 중학교시절 친구가 내일 동료 작가들과 다큐영화를 찍는단다. 이번 주 목요일 얼굴보자고 전화했더니 이 소식을 전했다.

신기할 것도 신나는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귀가 번쩍 뜨여서 "내가 가서 일일도우미를 해주마!" 했다.(이건 글로 쓰느라 순화해서 한 거고 사실은 무수리 해주마, 했다. 인터넷상 내 닉네임은 '중전'인데 내명부서열1위의 자리를 오십년지기를 위해 용감하게 벗어 던졌다. )


추위에 김밥 먹으며 고생할 일일배우(?)와 스텝을 위해 대구탕을 끓여볼까 싶어 대구를 사러 다.

(큰시장에 가서 생대구를 사다두고 글을 쓰고 있으니 오늘은 5시30분에 저녁밥 먹는 어른이가 벌써 거실에 나와서 대기중이다,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왔습니다아~)

지난 번 전시회에서 만났을 때,

친구 : 나 발레 배워.

나 : 어맛, 그건 주위에 너무 민폐 아님?

친구 : 그래서 눈치보며 조심조심. 나 다음 생에서의 꿈이 영화배우야. 그래서 미리 배워 두는 거야.

나 : 그래, 다음 생을 위해 미리 배워두는 거라는데 누가 말려!

이런 말도 안돼는 대화를 이어갔던 우리다.


사실 그녀와 나는 중딩시절 소설가가 꿈이었다. 중학교 일학년 겨울방학 때 둘이서 단편소설 쓰기에 돌입했다. 쓰긴 썼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감당이 안돼서 모두 사망시켜버렸다는 슬픈 결말.

그녀는 국어선생님으로 있으면서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고, 나는 약관22세에 1200매 장편소설을 썼는데 최종 2명에서 낙선했다. 그때 당선되었더라면 소설가로 살 수 있었을까, 아주 가끔 -10년에 한 번 정도 - 생각해보곤 한다. 결혼을 하며 소설가의 꿈은 접고 수필을 쓰다가 느즈막히 시조시인이 되었다.


그저께 통화에서

친구 : 다큐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세상에 이런 일이, 했단다.푸하!

나 : 미리 발레 배우고 난리 치니까 신이 감동 먹으셨나보다, 킬킬!

친구 : 감독에게 얼굴도 몸매도 안돼서 미안하다고, 다음 생엔 이쁜 팔등신 배우가 될테니 다시 만나자고 했어.

나 : 잘했어!


그녀와 나는 14살에 만났다. 거의 오십 년이 다 되어간다. 둘 다 순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파란과 만장의 삶이었다. 우리의 웃기는 대화는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후에 나온 말들이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애잔하다. 친구와 내가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정말 감사하고 뿌듯하다.


친구의 그림. 이천만원을 호가한단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잘 안팔린대서 내가 날마다 내가 믿는 신께 팔리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그나저나 내일 8시부터 촬영이라니 나는 집에서 5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친구네서 하룻밤 자고 올 생각이어서 지금부터 어른이 다섯 끼 먹을 반찬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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