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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l 17. 2020

까막눈 아줌마의 희망사항

2020.7.17.금

노후를 대비해 마련해둔 자그마한 땅 가장자리에 두어 해 전 사과, 매실, 자두, 대추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

가끔 가서 물을 주고 들여다보는데도(내가 아니고 남편이) 저들끼리 씩씩하게 잘 자라났다.


얼마 전에는 내가 가서 사과를 적과하고 봉지를 씌웠다. 매사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남편에게도 구멍이 있었다. 예를 들면 봉지 씌우는 일 같은 것, 작은 열매에 봉지를 씌우는 일은 단순한 노동 같지만 사실 고난도의 예술 행위이다. 저도 살려고 가지에 딱 붙어있는 엄지손톱만한 열매에 조심스레 봉지를 씌우고 속을 넣은 만두피를 여미듯 봉지를 잘 여며 봉지 입구 한 쪽에 붙어있는 가느다란 철사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조금만 힘을 주면 봉지가 찢어져 버리거나 열매가 떨어져버린다. 그 고난도 예술을 무식하게 투박한 남편의 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아직은 그런대로 유연하고 그럴싸한 내 손이 친히 출동을 한 것이었다.


유년시절의 사과는 정말  앙징맞고 예뻤다. 박진영의 '그녀'보다도 훨씬. 따버리기가 아까웠지마는 이럴 때는 과감하게 냉정해야 한다. 식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까막눈인 나는 사과 나무 바로 옆에 자두나무가 있는데  자두를 사과인줄 알고 적과 한답시고 여남은 개를 따버렸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 봤더니 의욕이 넘쳐 자두 나무에 손이 가 있었다. 마침 남편은 다른 일 하느라 곁에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한 바가지 잔소리가 묻히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오늘 가더니 무식한 주인 아줌마를 게의치 않고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자란 자두를 따왔다. 반 넘어나 까치가 먹었다며 아까워했다. 속으로 '괜찮아,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걸 따버린 사람도 있는데' 했다.


다른 나무는 잘 자라는데 대추나무는 오일장을 너무 오래 돌아다녔는지 살 때부터 시원찮았다. 제일 많이 마음을 주고 보살폈지만 심은 첫 해는 여린 잎 하나도 내지 못했다.둘째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죽었나보다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더니 올봄 "저 여기 있어요!"하며 기척을 냈다.

생명이란! 잠시 가슴 뭉클했다. 우리 인간사도 사는 일에 절망이 앞서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한 소쿠리 열매를 앞에 두고서 세상을 살피는 데는 까막눈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방울토마트  자두 적과한 사과  봉지씌운 사과나무 그리고 대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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