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세상으로 나아갔다가 먼지 폴폴 묻히고 나뭇잎들을 한금 감아 저녁에야 돌아온다
먼지에 인 뽀얀 하루들을, 거리들을 온전히 채워나간다.
사실 자동차가 있었기에 신호등이 태어난 거지만, 왜인지 신호등을 보면 자동차를 자식으로 둔 부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 태어나
자동차의 무심한 안전을 소리 없이 지켜주는 것이,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싶어도 초록빛으로 괜찮다며 언제나 잘 가라고만 하는 것이,
보고 싶은 마음을 참다 참다 빨간빛으로 자식을 불러 세워도, 시간 없다며 주황불까지도 내달리다 빨간불이 되어서야 겨우 멈추는 것이.
이곳저곳을 달리기 위해 태어난 자동차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목적지가 신호등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자동차는 새 타이어가 굳은살로 바뀔 때까지 달렸고
부모는 제 몸을 불살라 화려한 빛을 내어주었다.
자동차가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기를 바라면서.
정착한 신호등은 내달리는 자동차의 여로를 짐작만 할 뿐이다.
먼 거리를 달려 나가도
역마가 끼었더라도
그럼에도 인생의 목적지까지 안녕할 수 있기를.
결국 신호등도 쓰러지면 주황빛을 깜빡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쉽게 눌렀던 비상깜빡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달릴 수 없음과 보호할 수 없음.
인생의 비애들이 이따금 깜빡거리며 끝날 때까지 임무를 다하고자 움직인다.
맡은 바 임하는 것.
자동차는 결국 부모를 닮았나 보다.
* 한금: '아주 많이' 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