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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Oct 13. 2021

울타리로 둘러싸인 도시

인왕산 아래에서 창의문까지

인왕산 아래에서 바라본 한양도성과 도심 풍경 /  그림 이호정



 울타리로 둘러싸인 도시

 편의점 앞에서 시작되는 인왕산 성곽길은 여느 성곽길처럼 숲이 우거진 오르막길 사이로 드문드문 운동기구가 놓인 산책로입니다. 그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녹색 철문이 달린 암문이 보이고,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한양도성 바깥 길은 마을버스가 다니던 포장도로 대신 수풀 우거진 오솔길로 바뀌지요. 사람들이 죄다 안쪽 길로만 다니는지 인적은 없고, 우거진 잡목 사이를 비집고 들이친 가을 햇살이 근사한 나무 그림자를 새겨놓습니다. 우리는 무척이나 즐거운 마음이 되어 숲길을 걸어갔어요. 얼마 후 길이 우측으로 구부러지며 시야가 트이더니 인왕산 자락을 타고 넘어가려는 천년 묵은 이무기처럼 한양도성의 눈부신 몸체가 드러납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 일대는 잡목으로 뒤덮인 성벽 아래 낡디낡은 구옥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비탈면에는 고랑을 낸 채소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인왕구간의 한양도성이 정비되면서 낡은 집들은 철거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채소밭들은 숲길로 조성된 듯 보였습니다. 바깥 길이 끝나고 데크로 올라서려는데, 위에서 출사를 나온듯한 동호회 사람들의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도대체 무엇을 찍고 있을까 궁금해서 얼른 올라가 보니, 우와! 하고 탄성이 나올 만큼 근사한 도심 풍경이 한양도성 너머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왼쪽 끝으로 살그머니 보이는 낙산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지는 남산, 또 거기서부터 우리가 있는 인왕산 자락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에 놀라 저도 얼른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사진동호회 분들의 카메라는 미동도 없이 찰칵찰칵 소리만 내는데, 몸의 방향을 돌려가며 학부 시절 배웠던 노하우(?)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으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습니다. ‘진짜 맞네, 울타리….’ 여기 서보니 그제야 이 도시가 한양도성이라는 아름다운 울타리로 둘러싸인 도시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물증처럼 전해집니다.


 도로에 의해 잠시 끊긴 한양도성은 본격적인 인왕산 등산로와 함께 다시 이어집니다. 다산동에서 올랐던 계단만 하겠냐 마는, 만만치 않게 놓인 오르막 계단 아래서 아이들 준비운동 시킨답시고 대충대충 발목 돌리기를 하는데, 이게 얼마만의 인왕산 등산인지 감개가 다 무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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