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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물결을 따라 걷다

<조용히 걷는 생각들> (3)

by 이호준

10월 중순의 금강은 가을 정취로 물들어 있었다. 그 계절의 기운에 이끌려 부여에서 강경까지 이어지는 강변길을 천천히 걸었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절정에 이른 듯 만발했고 꽃잎은 강바람에 흔들렸다. 황금빛으로 번져가는 초목 사이에는 붉은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강둑 너머 들판에서는 벼가 고개를 숙였다. 어떤 곳에서는 이미 추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풍경이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에 의해 스러진 사마귀와 나비 그리고 누룩뱀을 마주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흔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여러 장면을 지나며 20km를 걸었고 걸음 수는 4만 보를 넘어 있었다. 다리에 근육통이 스며들었지만 만족감과 함께 마음은 오히려 넉넉해졌다. 제육볶음으로 허기를 달랜 뒤 강경역에서 용산행 ITX 열차에 몸을 실었고 세 시간 남짓 이어진 좌석의 포근함 속에서 발바닥의 열기는 식어갔다. 오랜만에 길게 걸으며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음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걷는다는 것은 두 발을 움직이는 일일 뿐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 깨달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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