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놓인 된장찌개가 구미를 당긴다. 상추와 쑥갓을 곁들여 밥 한술 얹고는 새우젓으로 밑간 한 양념장을 더해 입으로 한 움큼 밀어 넣는다. 그 고유의 맛과 향에 끌려 볼이 터질 듯하다. 이런 면에서는 아내와 공통점이 있다. 아내의 취향이 나와 별다르지 않다. 아내와 나는 채소류를 매일 먹다시피 해도 질리지 아니하니 다행이지 싶다.
아내와 차이가 있다면 밥물의 양이다. 진밥을 좋아하는 나는 밥물을 더 부으라 하고, 된밥을 먹고자 하는 아내는 밥솥에서 물을 덜어낸다. 한솥밥을 먹고살아도 이것만큼은 서로 양보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가 주로 밥을 짓지만, 간혹 내가 밥을 하는 날이면 아내는 어김없이 내 얼굴을 쳐다본다. 물의 양을 보겠다는 듯.
아이들은 우리 입맛을 닮지 않았다. 성격이 다르듯 밥에 대한 취향도 제각각이다. 작은애는 쌀밥을 좋아한다. 그에 비해 큰애는 밥에 콩이나 팥을 넣거나 현미나 흑미가 섞여도 잘 먹는다. 작은애 말로는 맨밥이 깔끔해서 좋단다. 어른들과 달리 애들은 고기류를 즐긴다. 그렇다 보니 어른들이 좋아하는 밥과 반찬이 식탁에 오르는 날에는 애들의 인상이 금세 찌푸려진다. 나름대로 아이들 입맛에 맞는 식단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내 처지에서는 보통의 식탁이 되고 만다.
밥물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식구들은 울고 웃는다. 내가 그렇고 아내가 그러하다. 큰애가 그렇고 작은 애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루 건너 만큼 진밥, 된밥을 번갈아지을 수 없다. 식구 수에 맞춰 솥단지를 따로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내가 밥 한 끼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싶다.
가족 중 누구라도 자기가 원하는 ‘밥’을 먹고자 하지만 그 기분을 다 맞출 수 없다. 밥 하는 사람의 취향대로 밥물의 양을 맞추면 입맛에 맞는 밥을 먹지 못한다. 어느 하나가 고집을 부리면 눈물 밥이 되고 만다. 맨밥을 지어야 하나, 혼합 곡류를 넣어야 하나, 아내는 주방에서 고민한다. 밥물의 양은 어찌 맞추면 좋을까? 반찬은? 아내의 손등에 오늘도 주름 하나 더 늘 것만 같다.
밥물의 양은 신뢰다. 어느 누가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밥물의 양을 정해 버리면 식탁에서 합일점은 무너진다. 자기 밥을 고집하면 다른 식구들은 식탁에서 멀어진다. 입맛까지 잃게 한다. 코끼리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맛있는 밥을 먹지 못한다.
밥물의 양은 가족 간의 약속이다. 가족 구성원 간에 오랜 시간 양보하고 타협하여 얻어낸 식탁의 규칙이다. 누군가의 입맛에만 맞추지 않고 서로 합일점을 찾아 만들어 낸 좌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 입맛이 변해 정해진 물의 양의 높이가 다를지라도 합일점에 다다른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수저를 들고 젓가락질하며 속을 채우는 매끼의 식사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적 먹을거리가 부실하던 때에는 서로 큰 밥그릇을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지금은 배곯지 않고 지낸다. 음식의 양보다 미식(美食)을 즐기는 시대다. 반찬 몇 가지 안 되는 조촐한 밥이라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밥상에 둘러앉기를 원한다.
밥솥에서 밥물이 끓어 넘친다. 구수하고 고소하다. 불꽃을 강한 불에서 중간 불로 조정한다. 식탁은 곧 평온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