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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비 Jan 21. 2024

20대 영끌족의 부동산 오답노트

2장.재테크 방황기 : 부동산

부동산 매수에 지난 3년간 피땀눈물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었다. 그러고도 한참 모자라 대출도 잔뜩 꼈다. 예상보다 빠르게 '20대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 눈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웬걸? 첫 부동산 매수 후 1년이 지나자 시장의 분위기는 매우 빠르게 반전되었다. 작년 집 보러 다닐때만 해도 5G급으로 소진되던 매물들이 이제는 거래가 되지 않아 적체되고 있었고, 매우 저렴한 급매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집값 고점에 영끌을 해서 제대로 물려버린 것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2030 영끌 족의 눈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갑자기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위해 아득바득 살아온 지난 시간이 허무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돈 벌고, 아끼고, 모았던 걸까. 몇 년간 모은 돈이 집값 하락으로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었다. 물론 아직 매도 전이니 사이버 머니라며 애써 위안했지만 허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돈을 벌어도 저축해야 한다는 압박에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억울했다. 어차피 사라질 돈이었는데 펑펑 쓰기라도 할걸! 아 모르겠다 이제 사고 싶은거 다 살래, 라는 보상심리가 생겼다. 비뚤어진 짠순이의 지독한 방황기가 시작된 것이다.



원래는 소비하기 전에 이게 정말 필요한지 고민하는 이중, 삼중의 필터링을 거쳤다면 이제 '사고 싶어? 그냥 사!' 로 뇌를 1초만에 통과해버렸다. 그동안은 어떻게 하면 더 잘 벌고, 잘 쓰고, 잘 모을지 고민하는게 즐거웠다. 그런데 이제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막 쓰게 된 것이다.




틈날 때마다 찾아가던 아파트 공사 현장에도 발길이 뜸해졌다. 내가 왜 이런 집을 샀지? 연고지도 아니고, 회사와 가깝지도 않은 곳에 살아야 한다니. 처음 샀을 땐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했던 집이 미워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로 이 집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 없는 법. 스스로 한 선택이니 원망할 사람도 없다. 어차피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 미친듯이 타오르다가 갑자기 얼음물을 확 끼얹은 듯한 지난 1년을 겪으면서 느낀, 첫 내집 마련에 대한 부동산 오답노트를 작성해봤다.



1. 싼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호갱노노에서 5억 이하, 500세대 이상 아파트를 필터로 걸고 수도권 거의 모든 아파트를 살펴봤다. 2019년부터 이어진 무서운 폭등장이었음에도 아직 가격이 5억 이하로 매수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20~30년 넘은 구축이거나, 교통 등 입지가 안좋은 곳들이었다. 그런데 B지역의 아파트는 예외였다.



입주 3년 이내~입주 예정인 신축 아파트 & 역과의 거리도 멀지 않음(도보 15분 이내)임에도 5억대로 매수할 수 있는 곳들이 여러 개 있었다. 당시 B지역이 저렴한 이유는 상승 후발주자라서 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맞다.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공급 폭탄 이라는 것! 2022년부터 2024년까지 B지역에는 약 10만 세대의 물량 폭탄이 예정되어 있다. 이곳의 적정 수요가 1년에 1.5만 세대인걸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물량이다.



그도 그럴 것이 B지역에는 굵직한 재개발이 몰려있었다. 그야말로 지역 전체가 공사판이라는 얘기. 당시에는 "와, 이렇게 많은 동네가 한번에 바뀌면 그야말로 천지개벽하겠다! 지금은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더라도, 나중엔 반전될거야" 까지만 생각했지, 그 물량들이 소화되기까지 견뎌야 할 인고의 시간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승 분위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꺾일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때는 당연히 실거주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락하면 들어가서 몇 년 버텨야지 싶었다. 실거주의 비중이 너무 컸기에 매도 계획까진 미처 고려하지 못했고 그래서 입주 물량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서 두번째 아쉬운 점이 생기게 되는데..



2.생활권의 한계

매수 당시에는 직장도 본가도 A지역이었으므로 A지역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곳의 아파트가 후보였다. 물론 이직의 가능성 & 서울 접근성도 따지긴 했지만 사실 큰 비중을 두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강남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수도권 서쪽 끄트머리에서 강남 출퇴근이란... 불가능은 아니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매우 소모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직장은 강남 인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때는 직장도 본가도 경기도 서쪽인만큼 주로 서쪽에 있는 도시의 부동산을 주의 깊게 봤다.



그런데 B지역을 매수하고 절절히 느끼는건 수도권 부동산은 강남 접근성을 1순위로 봐야 한다 는 것이다.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청권(CBD)와 여의도권(YBD)종사자를 합친 수보다 강남권(GBD) 종사자 수가 더 많다. 여기에 경기 동남권(판교,분당,수원,화성 등)에 몰린 대기업 종사자까지 고려하면 경기 서쪽/동쪽 부동산의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또한 상대적으로 경기 동남권 도시들의 대중교통이 더 발달되어 있어서 CBD, YBD 까지 가는 시간도 경기 서쪽 도시들보다 적게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인천 → 강남 출퇴근은 쉽지 않은데(물론 불가능은 아님) 분당→여의도 출퇴근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첫 부동산 매수이다보니 그동안 살아온 생활권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명확했다. 연고지가 아니더라도, 다음 집은 서울 아니면 무조건 경기도 동남쪽에 매수해야겠다 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3.너무 조급했다

작년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는 하루 빨리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등기쳐! 였다. 내가 보러다닌 B지역 부동산도 주변 신축 물량이 아주 많음에도 하루만 망설이면 매물이 사라졌다. 오전에 보고 마음에 들어서 그날 오후에 계약한다고 연락했는데 매물이 팔렸단다. 이런 상황이 며칠씩 반복됐다.



뿐만 아니라 같은 조건임에도 일주일만에 P가 몇 천씩 뛰는걸 보다보니 늦게 살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완전한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 가격을 깎는건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양도세 매수 부담이 당연시 되어 있었는데 나는 양도세 매도자 부담인게 어디야,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냉큼 매수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여유를 가졌어도 되는데 뭐가 그리 급했나 싶다. 그때는 금방이라도 집값이 날아갈 것 같았다. 부동산 왕초보 입장에서는 그게 고점인지, 반환점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고 공부만 제대로 한다면 기회는 항상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4.기회비용

마지막으로 부동산을 매수함으로써 잃게 되는 기회비용을 알지 못했다. 거주지가 제한된다는 점 외에도 대출금에 묶이게 되어 계속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도 생긴다. 사실 프리랜서로 살겠다며 퇴사했다가 빠르게 회사로 돌아간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부동산이 없었을 때는 당장 수입이 적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나에게는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다. 집이 생기는 대신, 자유는 줄어들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처럼 완벽한 정답처럼 보이던 이른 시기의 부동산 매수가 양날의 검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한동안은 자주 들어가던 부동산 어플도 더 이상 보지 않고, 5년 넘게 지속해왔던 부동산 공부 자체에 관심이 식어버렸다.



https://blog.naver.com/banbi13/222837274722

(↑ 오답노트 2탄. 그럼에도 잘한점 & 향후 계획)




에 진심이었던 20대가

더 이상 돈을 쫓 않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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