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by iima

오랜만에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이런 날은 거실 창에 붙어서 비 내리는 마당을 하염없이 보고만 있어도 좋겠지만, 이런 날은 왠지 비와 어울리는 곳을 찾아서 나가고 싶다. 어디가 좋을까. 비 내리는 날 가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아이와 함께 가야 하니 이젠 한층 더 고심해야 한다.


'비 내리는 날 아이와 가기 좋은 곳'

뻔한 키워드로 검색하면 내가 딱 필요한 시원한 결과를 찾기가 어렵다.

BEST3, TOP3라고 해도 다 그저 그런 곳이고, 광고스럽고......


아. 진짜 어디 없을까... 생각하다가 어렴풋이 떠오른 곳이 있었다.

"여보 여보! 나 임신했을 때, 더덕구이 먹고 싶어서 어디 갔다가 문 닫아서 다른 식당 갔던 날 기억나? 그때 거기 완전 숲 뷰였잖아. 맛은 그저 그랬던 거 같은데, 숲이 기억나. 지금 거기 가면 딱일 것 같은데? 점심도 먹어야 하니까"


남편이 기억을 더듬더듬 하면서 지도를 긁적긁적 하다가, 어디에 갔었는지 찾아냈다.

" 여기 맞아?"

"오, 여보 거기 맞아. 가자! 거기 가자! 지금은 거기가 딱이야."




차가 들어서자 한 번의 기억이 그대로 떠올랐다.


뭐지 이 편안함은...

아이가 대체로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고 식당 입구에서 안 들어간다고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칠 때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되려 신이 나서 들어간다.


유행 따라 지은 중목구조의 한옥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진짜 한옥 같은 건물.

입구부터 드르륵 아귀가 잘 안 맞는 오래된 미닫이 문을 열면 넓게 찌그러진 사다리꼴 모양의 현관이 있다. 신은 신장에 넣어주세요라고 무심한 듯 정성스럽게 써붙인 에이포용지 안내장과 발 때가 묻어서 번들번들한 단단하고 납작한 발판, 믹스 아닌 원두커피 머신에서 얼핏 새어 나오는 커피향기까지 전혀 조화롭지 않은데 조화롭다.


그리고 한번 더 아귀가 안 맞는 드르륵 미닫이 문을 지나서 들어오면.

건물의 두 면이 숲과 맞닿아 있고, 그쪽은 다 통유리창이고 끝에만 방충망 있는 창문이 있다. 정말 아쉽게도 비가 멈췄지만,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짙은 소니무 숲과 중후한 중목 기둥에 두툼한 서까래에 황토천장, 황토벽, 그리고 직접 만든 것 같은 투박한 우드슬랩 테이블까지 쭈욱 연결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화장실도 밖으로 건물을 반바퀴 돌아야 나오는 데, 그리 청결하지 않은 화장실마저 그저 예스러워서 불만을 갖지 않으려 했다.


아... 편안하고 좋다.

싶으니, 아이도 기분이 좋아 보여서 "여기 어때? 너도 편안해?"라고 물으니 배시시 웃으며 끄덕끄덕 한다.


통나무를 자른 것 같은 동그란 부채모양 메뉴판도 좋았지만, 흔한 기성 수저통이 아니라 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 접시에 수저를 넣고 무심한 듯 수건을 덮어 놓은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음식이 조금씩 나오는데 그릇이 도기처럼 보여서, 오 좋다. 왠지 음식도 시골스럽고 더 건강하고 맛있어 보인다. 생각하던 찰나에 물 따라 나온 종이컵이 시선을 붙잡아서. 아... 이거 참 아쉽구먼. 싶었다.


이 하찮은 종이컵 때문에, 부드럽고 편안하게 이어지는 시선과 감동이 잠시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물컵을 두어 개 더 내는 게 많이 어려운 걸까...?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종이컵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 구석으로 치워두고.


지난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연거푸 맛있다를 외치며 기쁘게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다. 물론 아이가 잘 먹으니 엄마는 더 기뻤고. 오늘은 불편보다는 좋은 점들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편이 뜬금없는 곳에서 나왔다.


다 먹어갈 때쯤 밥그릇을 긁는데, 이게 도기가 아니네?

소리가 너무 가벼운 거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밥그릇 무게가 가볍다는 것을 인지했다.

엇? 하고 뒤집어서 소재를 확인하고, 설마 이것도....? 메인 접시 같은 그릇을 두드려 보고서야...

아. 뭐야. 전부다 도기 디자인을 한 멜라닌이다.

아무도 날 배신한 적 없지만, 뭔가 배신당한 느낌.


아 도기를 쓰면 좋았을 텐데, 왜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 도기를 쓰면 일하시는 분이 무거워서 손목이 아플 테니 직원 배려용으로 선택한 걸 거야. 그래도 콘셉트는 잘 맞췄네, 어떻게 이런 걸 찾았을까... 나 혼자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변명을 찾아내며 위안을 삼지만. 그래도 도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정말 만족스러웠던 공간이었다.

남편에게 좋았다 하니, 오늘은 남편이 아이 밥을 먹여서 편안하게 식사해서 그랬던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네.





비가 쏟아지거든 다시 한번 가면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맙소사, 한 시간에 한 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