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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May 19. 2020

사소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일일 권장량 이상의 피로와 기대치 이상의 즐거움이 동반하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아이에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알려줘야만 하는데,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도 있다. 사소함이라 하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말한다. 바람이 불어올 때 재빨리 눈을 감는 것이나 흥! 하고 코를 푸는 것, 양치물을 뱉는 것 그리고 윙크나 메롱 같은 것들. 즐거움은 사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찾아온다.     


유은이에게 메롱을 처음 가르쳐주던 날을 기억한다. 한창 ‘잼잼’하던 시절이었는데, 윙크와 메롱으로 이쁜 짓의 업그레이드를 해보려 했던 것 같다. 아기 얼굴 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여러 번 메롱을 해보이며, 혼자만 신이 났었다. 유은이는 이런 엄마를 신기해한 건지 이상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바라보고는 있었다. 마침내 어설프게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던 아기의 얼굴.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따라오던 아기의 얼굴은 기억 속에 여전하다.     


“엄마! 이것 좀 봐~ 웃긴 얼굴~”


옆에서 부르는 경쾌한 목소리에 씻던 그릇을 놓아두고 돌아본다. 시선 끝엔 양손으로 입꼬리와 눈을 잡고 한껏 양옆으로 벌린 채, 메롱을 하고 있는 유은이가 있다. 스스로 개구쟁이의 얼굴을 선택한 어린이. 스스로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 노력하는 어린이의 얼굴이다.     

방년 5세의 유은양은 최근 엄마를 가르치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처음으로 기억하는 사건은 민망하게도 부부 싸움이 원인이었다. 싸움이 있은 지 며칠 후, 뜬금없이 나를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안 된다고 말할 때는 (낮고 근엄하면서도 단호한 톤으로) 안돼애애- 이어케 말해~!”

심지어 그 자리에서 연습을 몇 차례 시키기까지 했다. 그날의 귀여운 가르침은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한 부모에겐 큰 가르침이 되었다.     


매일이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것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피로감은 쌓여만 갔다. 피로감은 일상을 나태하게 만들었고, 옳고 바른 부모의 모습을 잘 지켜내기 어렵게 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다음부터는 잘하면 되니까, 일단은, 그냥 같은 단어들로 채운 부끄러운 말풍선이 가득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나만의 말풍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곁에 있던 유은이의 눈을 간과하고 있었다.

유은이는 나태함 속에 묻어둔 원래의 옳은 방식을 돌려주었다. 대충에서 ‘잘’ 할 수 있도록.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볼 때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고. 설거지할 때 물을 틀어놓고 있으면 물 낭비하면 안 된다고. 빨대를 건네주면 바다 거북이가 아프지 않으냐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시작은 내가 북돋워주었겠지만, 지속하는 힘은 유은이가 내주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유은이는 현명하고 유연하다. 다툼이 있으면 반드시 화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유은이가 알려주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냉기류가 흐를 때, 유은이는 바빠진다. 떨어져 앉은 부부를 억지로 옆에 나란히 앉게 하고, 손을 잡게끔 한다. 동그란 오리 엉덩이를 흔들며 쉴 새 없이 종알대는 부리, 아니 입 때문에 결국 누구 한 명은 웃음이 터지고야 만다. 심지어 자신이 혼났을 때조차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야 마는 일관성과 집요함까지 갖췄다. 덕분에 우리 집은 소소한 다툼에도 꼭 화해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힘든 일에 함몰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노하우도 유은이가 가르쳐준 것이다. 유은이는 짜증내는 엄마를 앞에 두고도, “괜찮아. 그래도 나는 즐거워~!” 라며 태연하게 콧노래를 부른다(이쯤 되면 강철 멘탈이 부러워진다). 좋아하는 동요를 마음 내키는 대로 개사해서 부르다보면,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본인의 흥이 올라버린다. 웃긴 얼굴이라며 갖은 노력을 다한 표정까지 지으면, 어느새 분위기의 주도권을 잡아버리기도 한다(내가 이러려고 메롱을 가르쳐줬나).     


사소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아이와 주고받으며 즐거움은 배가 된다. 내겐 단순한 정의도 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무지갯빛 스펙트럼처럼 풍부한 의미로 다가온다. 상상력은 풍부하되 편견은 없는 존재 앞에서, 내 앎은 무색해진다. 무심결에 했던 행동을 다시 보기위해 멈칫하는 순간들이 쌓여간다. 꽤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새삼스러운 일들 투성이라니,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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