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제나 Oct 18. 2023

10. 엄마와 딸은 같은 주기로 공존한다

10. 엄마와 딸은 같은 주기로 공존한다


엄마와 딸의 인생주기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엄마는 딸의 인생이 지구라면,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달처럼 맴돌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를 떠나지 못한다거나, 지구가 달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딸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그 시기를 같이 보내는 엄마들과 모인다. 주로 아들과 딸이 하교하는 시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각자 비슷한 여유시간을 가지고 있어 모이기 편리하다. 또, 비슷한 주제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엄마들에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부여한다. 어느 학원이 좋다더라, 요즘 학교가 이렇다더라 하는 이야기말이다.


하지만 딸이 대학에 가기를 실패하여, 그 딸을 따라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된 엄마는 그 엄마들과의 끌어당기는 힘을 잃어버리고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아들이 특목고, 마스터고 같이 특수한 환경의 진학환경을 가진다면 또 엄마들과 당기는 힘은 없어진다. 그렇게 끊어진 힘은 엄마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딸 또한 재수를 하면서 대학에 간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고, 아들 또한 친구들과 멀어지게 된다. 


실제 과학적으로도 달과 지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니까 말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궤도 속에 함께 공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사이의 공존이 힘들었던 시기도 물론 있다.


혜영이는 엄마인 내가 봤을 때 비관적 낙천주의다. 눈앞에 놓인 일에는 비관적인 반면에, 또 길게 보면 낙천적이다. 취업을 할 때도 그렇다. 자소서를 쓰는 그 순간, 면접을 보는 그 순간에는 예민의 극치, 비관의 극치다.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시기가 끝날 거라고 믿으며 모든 일을 해낸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이 오고, 안 그래도 좁았던 취업의 문이 더 닫히자 기성세대에 대한 어떤 분노가 무의식 중에 표출될 때가 있었다. 그 공격이 때로는 나를 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다녀와서 기분이 나빠 나에게 하소연한 것이다. 내일이 혜영이가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이었다. 아르바이트 사장이 오늘 아르바이트 회식하자는 걸, 내일 면접이라 말하며 혜영이가 거절했던 게 발단인 모양이다. 혜영이가 죄송하다며 거절하자, 그 사장님이 “면접이 뭐가 어려워? 그거 그냥 저를 안 뽑으시면 손해십니다, 하면 되는 거야. 뒤풀이 가자.”라고 말했다는 거다. 


그분은 아마 이 이야기가 자기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의 재치를 보인다고 나름 농담을 던진 건 걸 거다. 하지만 당연히 내일 면접인 혜영이에게는 그 농담이 자신의 힘든 상황에 대한 무시로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누구의 편을 들자하여 그런 게 아니라, 나와 동세대로 그분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보게 되다 보니, 나는 분노하는 혜영이의 언사에 묘한 반발감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그럼 그분이 어떻게 해줄 수 있어, 그 말 말고는.”이라는 말을 해버린 거다. 이후, 혜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공존이란 각자의 자리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닫힌 문을 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혜영이가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뒤풀이와 자신의 취업 상황이 비교당한 것에 있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뒤풀이를 하려고, 혜영이가 지금 목메고 있는 면접 상황을 가볍게 이야기한, 지켜야 할 거리를 넘어버려 혜영이는 화가 난 것이다. 그 상황에서 한 발짝만 멀리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많은 것들은 누군가 한 발짝 멀어진 뒤에서야 알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어렵다. 부모란 존재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의도하는 바를 내가 아닌 자식에게 (물론 예전에 나의 일부였지만) 100% 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혜영이 꾹 다문 입을 볼 때,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저 까만 머릿속은 내가 낳았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딸에게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해서, 언젠가는 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아서, 언젠가는 말을 너무 많이 얹어서 관계가 어긋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다른 상황이었고, 혜영이가 원했던 조치는 달랐겠지. 하지만 그걸 맞추기란 여간 쉽지 않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혼자 극복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도 혜영이는 서운할까? 낳아 기른 지 30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우리 엄마, 우리 딸과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며칠 전, 혜영이가 퇴사를 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을 때다. 버스 정류장에 큰 짐을 둘러메고, 또 들고 있는 혜영이를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렇게 큰 짐을 들고 떠나던 수많은 어린 혜영이와의 헤어짐이 생각난다. 그래도 혜영이에게 이런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웃는다.


차에 탄 혜영이도 어색한지, 갑자기 실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혜영이 친구가 결혼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도 결혼할까 하는 소리다.


“그래? 엄마는 사람 됨됨이만 괜찮으면 돼.”


혜영이는 또 만약에로 시작하는 시험 문제를 냈다. 


“만약에 내가 대학에 안 나온 사람을 데려오면?”

“내가 데려온 사람이 만약에 직장이 없으면?”


여기선 사실 덜컥, 애가 나 몰래 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혜영이의 눈을 보니, 진지해 보이진 않는다. 난 갑자기 받은 문제에, 적당한 답을 정리해 알려 준다. 엄마는 대학에 안 나와도, 직장이 없어도 혜영이가 데려왔다면 괜찮을 거라고. 급한 답변이 몇 점짜리 일지 눈치를 보는데, 혜영이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멈췄다. 뭔가 잘못 말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다시 혜영이가 질문한다.


“엄마는? 엄마는 결혼해서 행복해? 나 낳아서 행복해?”


혜영이는 이렇게 꼭 실없는 소리로 웃다가 갑작스러운 큰 돌을 던지곤 한다.


“당연하지. 혜영이를 낳아서 엄마는 행복해.”


빛나는 혜영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혜영이는 어색한 듯 절대 운전석에 앉은 나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또, 내가 낳은 저 머릿속에는 어떤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켜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혜영이가 조용해졌다. 이렇게 혜영이가 돌아온 이후, 우리의 계절은 다시 같아지고 있나 보다.

이전 10화 09.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