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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an 26. 2023

꽃처럼 눈 내린다


눈 내린다. 새벽부터 내린다. 조용히 내린다. 바람이 없어 흩날리지 않는다. 살살 쌓인다. 


눈 내린다. 선명하게 내린다. 어제부터 날이 꽤 추웠다. 공기도 차가웠고 눈이 내려앉을 자리가 적당히 차가웠다. 그러니 앉으면서 녹지 않았다. 결정 하나하나의 모양이 다 보인다. 


눈 내린다. 가볍게 내린다. 팔랑팔랑 내린다. 대기 중에 수분도 많지 않은가 보다. 내린 눈의 결정들이 무겁게 겹쳐지지 않고 하나 위에 또 하나가 살포시 얹힌다. 


눈 내린다. 빛나면서 내린다. 잠깐 구름 사이 해가 나고 빛이 퍼진다. 눈의 결정이 반짝거린다. 찰라 중 찰라의 아름다움이다. 햇볕이 더 진해지면 녹아 사라질 것이므로.


눈 내린다. 꽃송이처럼 곱게 내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섯 개의 꽃잎을 가진 꽃이다. 바늘보다 가느다란 눈의 꽃잎들은 각자 다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어느 것은 동그란 매듭을 짓고 있고 어느 것은 깃털처럼 펼쳐져 있다. 


눈 내린다. 시든 국화꽃 위에 내린다. 늦가을 오후를 노랗게 물들이던 국화가 보인다. 시들어도 형체가 분명한 수국꽃 위에도 내린다. 지난 여름날 푸른 꽃그늘이 떠오른다. 잎도 꽃도 없는 빈 목련 가지에도 내린다. 지난봄 툭툭 피어나던 목련꽃 자리에 꽃잎처럼 희끗희끗 쌓인다. 


눈 내린다. 솜털 보송한 새 꽃눈 위에 내린다. 시든 가을꽃과 여름꽃에 인사하고 봄의 꽃눈을 두드린다. 겨울꽃이 봄꽃에 인사하려 두드린다. 다음 주면 입춘이라고. 이제 곧 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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