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제일 예뻐요

by 최희정


어린이날 사람들이 자신이 어린이였을 때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놀았다. 각자 올린 오래된 사진 속에 야무지게 갈래 머리를 땋은 눈빛이 초롱초롱한 꼬마 소녀도 있었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차렷 자세를 하고 서있는 소년도 있었다.


사진 속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자식에게 저런 블라우스에 저런 치마를 입힌 것을 보니 제법 부유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도 있었고 여러 형제가 배를 쑥 내밀고 흙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는 여긴 시골인가 보다 이 형제들이 지금은 나 같은 중년이 되었을 텐데 다들 잘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날 사진에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엄마 집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들 끝에 엄마 혼자 양장을 입고 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도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이참 입고 갈 옷이 없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큰 언니가 들고 온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엄마는 한숨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언니는 이미 자기 방으로 건너간 뒤라서 엄마의 말은 듣지 못했다. 큰 딸이 들고 온 쪽지로 기분이 들뜬 아빠도 엄마의 말을 듣지 못하셨다. 우연히 엄마 옆에 있던 나만 들었다.


큰언니가 중학교 갈 무렵 우리 집은 경제적인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아빠는 야간중학교를 보내고 낮에는 일을 시키자고 했지만, 엄마가 언니의 6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여 어찌어찌 일반 중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한다. 어렵게 들어간 중학교 첫 시험에서 언니는 국영수과 네 과목 모두를 백점을 맞는 대단함을 보여주었다.


언니가 들고 온 가정통신문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공부 잘하는 딸 덕분에 상을 받는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식을 보면서 기뻐하기보다 입고 갈 옷 걱정을 하는 엄마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열 살이었다.

몇 년 전 엄마 집에 갔다가 앨범 속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고 여러 명의 여성이 나란히 손에 선물 상자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열 살 때 어느 날의 엄마의 한숨이 떠올랐다.


입고 갈 옷이 없는데 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진 속에는 다섯 명의 어머니들이 서 있다. 우리 엄마를 빼고는 다 한복을 입고 있다. 어떤 사람은 머리도 미장원에 가서 손질을 하고 온 것처럼 보였다. 그 당시 저런 자리에는 한복을 입는 것이 격식 있는 모양새였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집은 살림이 팍팍하던 시절이라 엄마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러 갈 때 입고 갈 한복이 없었고 엄마 혼자 양장을 입었던 것이다. 모직 원단으로 양장점에서 맞춘 회색 바지와 조끼 투피스는 괜찮은 옷이긴 했지만 십 년도 더 된 옷이었고 남들은 다 한복을 입고 올 것이 뻔하니 엄마는 그 자리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또한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싶다. 딸은 쉰 살이 넘어서야 마흔두 살 엄마의 마음을 깨우친다.


얼마 전에 엄마 집에 가니 그 사진을 아예 벽에 붙여 두셨다. 엄마는 그 사진을 보면 등록금 걱정으로 자식들 학교를 보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옛날이 떠오를 것이다. 입고 갈 한복이 없어서 난감했던 마음도 떠오를 것이다. 두 살 터울 줄줄이 다섯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던 고생도 떠오를 것이다. 일상의 고생을 더 거칠게 만들던 남편의 호통도 떠오를 것이다.


그래도 사진을 보이는 곳에 두신 것을 보니 공부 잘 해준 큰 딸이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크신 것 같다.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젊은 사십 대 초반인 내 엄마는 오래된 사진 속에서 세련되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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