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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y 22. 2021

주택살이. 자연친화적인 삶의 대가

캐나다 첫 집이었던 아파트에서 베드 버그(빈대)를 혹독히 겪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옛 말은 정말이었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태워야만 끝날 것 같은 그 끈질긴 생명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우리는 결국 이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다시 새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새 집은 앞마당에 푸릇푸릇 잔디가 깔려있는 주택이었다. 뒷마당에는 사과나무와 자목련 나무도 있었다. 꿈꿔왔던 주택살이에 마음이 설렜다. '아침에 일어나면 데크에 앉아 커피를 마셔야지, 텃밭을 만들어 신선한 야채도 따 먹어야지, 아이들이랑 뒷마당에서 물놀이도 해야지.'




하지만 낭만적일 줄로만 알았던 주택살이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붕 밑에 벌들이 몰려와 벌집을 짓지를 않나, 주방 후드와 연결된 환풍구에 새가 들어와 파닥파닥 하지를 않나.


물론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참 좋은 환경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청설모와 다람쥐가 정말 많다. 우리 집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창문 밖 청설모랑 눈이 마주쳤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정말입니다!) 나무 그늘이 있어서 그런지 창문 너머 펜스 위가 그들에겐 나름 핫플레이스인 듯하다. 더운 여름에는 그 펜스 위에 배를 깔고 누워 한참을 쉬었다 가는 다람쥐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서로의 저녁을 먹다 눈이 마주친 청설모 친구


그러니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있겠나. 창 밖을 보며 멍 때리기만 해도 시선을 잡아끄는 일이 천지다. 창문 밖 풍경을 주제로 노래도 만들고, 색깔별로 다람쥐 이름을 붙여 아는 척도 하고. 자연친화적인 환경이 아이들 정서에 긍정적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감이자 공부감이 되어주는 훌륭한 환경이다.


그러나 이렇게 귀여운 다람쥐라도 뒤통수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겨울이 가까워오면 이 귀여운 놈들이 외모만큼 깜찍한 일을 벌여놓기 때문이다. 뜨뜻한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 도토리를 잔뜩 모아 놓는 것이다. 그러다 전선이라도 갉아 놓으면...! 다람쥐에게 피해보상 청구를 할 수도 없고, 뒷일은 오롯이 인간들의 몫이다.


한국에서는 롯데월드에서나 만났던 너구리 친구도 예외는 아니다.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하는 짓은 말썽꾸러기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제대로 닫아놓지 않은 날에는 외식 파티 중인 너구리를 마주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손(?)을 어찌나 잘 쓰는지, 한소끔 식히려고 밖에 내어놓은 삼계탕 냄비에서 살코기만 발라 훔쳐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ㅎㅎ


그중 최강자는 역시 스컹크다. 그 독한 방귀 냄새... 캐나다에서는 흔히 맡을 수 있는 마리화나 냄새와 비슷하지만 그 농도가 말도 못 한다. 어느 날 밤은 우리 집 근처에서 방귀를 뀌었는지 자다가 지독한 냄새 때문에 온 가족이 잠에서 깼다. 그리곤 다음 날 늦은 오후까지 그 냄새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집 앞에서 발견된 스컹크. 야행성인 녀석이 어쩐 일로 낮에 발견된 날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어있고, 노력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없다. 낭만적으로만 보였던 자연친화적인 삶에도 대가가 필요하니 말이다.


어느 날에는 뒷마당에서 야생동물이 먹고 남긴 절단된 토끼 머리를 발견할 수... 윽. 더 이상 글로 쓰고 싶지 않은 그런 장면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후딱 처리할 수 있는 담력과 바지런함도 필수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용기와 담력과 바지런함까지 갖춘 파트너, 남편 혹은 아내가 있으면 정말 정말 땡큐다.^^; (저는 쫄보라 못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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