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와 바꾼 제주여행

아이의 첫 비행기

by 다정한



우리나라는 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되었을 때, 건강하게 잘 자란 것을 축하하며 돌잔치를 연다. 옛날에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아기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도 컸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모여 아기의 성장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6년을 기다리는 동안 종종 뷔페에서 진행하는 대형 돌잔치에 갔다. 그때마다 돌잔치가 이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고, 돌잔치 비용으로 친정식구들과의 여행을 결정했다. 당시 우리 삼 남매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어서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가족이 함께 출발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약 1시간 정도 비행기로 이동을 했다. 부산에 살고 있던 남동생 부부도 돌이 된 조카와 함께 제주도에 도착을 했다. 당시 막내 남동생은 서울에 살고 있었고, 6개월 차 신혼부부였는데 합류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만났다. 2박 3일간 우리의 발이 되어줄 렌트 차량을 인수하러 갔다. 당시 차량 두 대를 렌트했어도 되었다. 굳이 한 차에서 함께 대화를 해야 한다며 12인승의 스타렉스를 빌렸다. 첫날,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에어앤비를 통해 8명의 성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숙소를 찾았다. 거실 하나에 방 3개 정도가 적당했다. 당시 겨울이었기 때문에 숙소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2박이면 한 곳이 좋겠으나 이동 경로에 따라 다른 두 곳으로 했다.


인근 횟집에서 고등어 회를 사 와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거실에 둘러앉아 제주도의 별미를 맛보고,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첫날이었다. 다음 날, 우리가 찾아간 관광지는 문을 닫았더랬다. 다만, 갈치 요리를 맛나게 먹었더랬다. 제주도의 겨울 바다도 시원했었지.


올해 엄마의 칠순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 다낭, 태국 치앙마이, 제주도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나 우리를 강원도를 택했다. 어른 8명, 아이 2명이었던 우리가 어른 8명, 아이 5명이 되었고 13명의 인원이 함께 비행기를 타는 여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원도로 갈 때, 우리는 각자의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세 대로 이동이 될 것 같다. 2박 3일 동안의 숙소는 한 곳으로 잡았다. 레고랜드, 남이섬이 주요 목적지 되겠다. 엄마의 칠순 잔치지만 아이들의 일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삼 그 당시 나의 의견을 따라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조카의 돌잔치라 하니 기꺼이 따라 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렇게 단순한 선택을 했던 나를 칭찬한다. 함께 하는 여행은 설레지만 준비할 것이 꽤 있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언제든지 가족들이 따라 준다면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다만 대가족이 함께 가기 힘들어 우리 가족 3명만이 여행을 가게 된다. 심지어 긴 여행을 힘들어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하기도 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제주도 여행, 돌이 된 아이들과 그저 함께 한 것이 다이다. 여행,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물이 다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듯 나는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또 여행을 준비한다.


이제 열 살이 된 아이와 앞으로 따로 또 함께 여행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10년 동안 우리는 딱 붙어서 여행을 했다. 붙어 다닌 10년 간의 여행 여정을 담아 보려 한다. 돈도 시간도 많지 않아 주로 가성비 좋은 여행이었다. 아이 위주의 여행이라 쓰고 엄마가 더 행복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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