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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차] 어떤 죽음(1)

Highway to Hell - 지옥으로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

by 여운설

2023년 5월 29일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프라리오스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 23.3km


아침부터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조심한다면서 발을 헛디뎌 기어가는 달팽이를 밟았다. 뚜~둑 껍질 깨지는 소리와 물컹한 감촉에서 내 부주의로 가여운 축생이 희생된 걸 느꼈다. 그제부터 눈에 많이 띄어 나름 조심했건만 선업을 쌓기 위해 기꺼이 길을 나섰을 아무 죄 없는 달팽이의 엔트로피를 강제로 증가시켰다.


우리가 잘 아는 열역학 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되 그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 열역학 2법칙은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즉 어느 한 실존의 영역이나 어떤 관찰 대상으로 한정된 ‘계system’는 필연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도로 설명된다. 그러나 에너지가 평형상태로 안정화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다. 특정한 계가 열적 평형에 도달하여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포되면 더 이상 거시적으로 에너지 이동이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를 무질서, 평형 상태로 정의한다면 엔탈피Enthalpy는 시스템에 내재한 연결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둘은 상호 반비례한다. 엔트로피가 낮아지면 엔탈피는 높아지고 반대로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엔탈피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신병 훈련소를 예로 들겠다. 유격 조교의 통제 하에 병사들이 한창 유격 훈련 중이다. 훈련병들은 엄한 표정의 조교에 주눅들어 잔뜩 군기 들었다가 휴식 시간이 되면 눈치껏 각자 편하게 쉰다. 훈련 중에는 엔트로피가 낮아지고 쉬는 시간에 엔트로피가 높아진다. 훈련병들의 각 잡힌 자세와 질서 정연한 대오를 이루는 엔탈피와 자유롭게 쉬는 엔트로피가 서로 반비례한다. 이제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간인 우주를 빗대 보자.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도달하면 우주는 사라진다. 우주가 죽는 것이다. 왜일까?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들의 연결 에너지가 100% 엔트로피로 전환되는 열적 평형에 도달하면 별의 생성과 소멸, 에너지의 이동과 같은 물리적 활동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별은 꺼지고 에너지 흐름이 끊기는 열적 죽음을 맞는다. 엔트로피가 최고조에 달할 때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 에너지마저 소진된다 가정하면 우주는 마침내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빅 크런치 상태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주는 불가항력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이처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명제는 달리 말해 모든 물질과 만물이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문장으로 환치 가능하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인체를 물리적 실체인 하나의 ‘계’라 여기자. 사람은 세포의 구성체다. 세포는 생체 고분자로 구성된다. 생명체가 엔트로피의 최대치에 도달하면 인체 내 모든 유기 생체고분자들의 연결 에너지가 제로가 된다. 그 결과 대사와 복제 활동이 멈추면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다. 생물을 대사와 복제가 가능한 독립 개체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죽음을 맞는 순간이다. 인문학에서는 죽음을 빗대어 종종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죽음은 하나의 개체가 자신의 ‘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위의 생태계로 흡수되는 현상이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해 에너지를 얻듯이 우리 몸을 이루던 유기 고분자가 점차 분해돼 생태계의 자양분으로 흡수되는 생명의 순환 원리에 다름 아니다. 과학적으로는 인간의 죽음이라 해서 다른 종 보다 더 애틋하거나 유의미할 게 없다.


생명 현상은 본질적으로 엔트로피 증가에 대항하는 행위이다. 외부에서 섭취한 에너지원을 흡수하여 연결 에너지를 높이고 자기 복제를 함으로써 엔트로피를 인위적으로 낮춘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에는 엔트로피를 낮추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달리 보면 매우 작위적인 과학적 의지가 담겨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부부, 가족, 친구, 직장, 사회와 같은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 가능하다. 결혼을 유지할 연결 에너지가 소멸되면 이혼한다. 친구와 헤어지고 직장을 퇴직하거나 해고된다. 사회가 해체되고 국가는 멸망한다. 집단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엔탈피가 제로에 수렴하고 엔트로피가 최대로 증가된 결과다. 구성원들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을 등한시한 결착은 관계의 해체와 해소로 귀결된다. 이를 막으려면 지나친 부의 집중화를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대가가 필요하다. 엔트로피에 담긴 과학적 원리는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거나 비용을 핑계로 이를 외면해선 결코 안 된다는 인문학적 교훈을 던진다.


내가 알기로 자연에서 가장 무질서한 에너지는 열 에너지다. 열은 접촉한 공간을 통해 어떤 방향성이 없이 랜덤 하게 방출, 복사된다. 무질서도가 높아지니 모든 에너지는 열 에너지로 변환된다. 인간 사회의 무질서도가 가장 높은 평형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함의를 가질까?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 정점에 달해 폭발하여 이를 촉발시킨 원인을 해소한 것이라 하겠다. 사회의 엔트로피가 최대로 증가할 때 예상되는 부작용은 첨예한 갈등이 비이성적인 광기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소요와 폭동이나 전쟁 같은 폭력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낡고 모순된 구체제를 뒤엎어 진보를 이루려는 혁명마저 간혹 광기에 사로잡혀 거룩한 대의를 잃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한 발자국 내딛는데 소모한 엔탈피와 나 때문에 죽은 달팽이에서 증가한 엔트로피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나와 달팽이만 존재하는 계에서는 열역학 2법칙에 따라 달팽이의 죽음으로 발생한 엔트로피가 더 크다. 죽음이라는 질적 변화가 계의 무질서를 늘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존적 관점에서는 설령 엔트로피가 더 늘어난다 쳐도 달팽이의 죽음이 본질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평형 상태라 단언키 어렵다. 이런 논리라면 자연법칙을 명분삼아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고 심지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고 학살하는 게 역사의 발전이라는 나치식 궤변이 가능하니 말이다. 생명 원리는 그 자체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이다. 사회 발전과 인류 번영, 지구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는 자연법칙에 항거함으로써 엔트로피를 낮추고 동시에 필요한 연결 에너지를 증가시킬 대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열역학 2 법칙인 엔트로피에 담긴 철학적 의미는 불교 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곧 시간이 흐를수록 질서가 무질서를 향해 끊임없이 변함을 뜻한다. 불교의 무상無常 사상은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사라진다는 원리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결국 변화해 소멸하기 마련이니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일시적이며,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가 추구하는 열반涅槃은 궁극의 해탈로부터 더 이상 고통이나 변화를 겪지 않음으로써 물리적인 속세를 초월한 상태이다. 열반을 하려면 우주의 본질인 무상과 무아無我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고통의 원인을 이해해야만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무질서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계의 본질적 흐름이자 절대 법칙은 불교의 무상, 무아로부터 현상의 본질을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불교는 모든 생명체가 윤회한다고 말한다. 달팽이는 생전에 저지른 자신의 카르마업, Karma로 인한 축생畜生이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선업과 자비를 쌓으면 다음 생에 인도人道의 세상으로 되돌아올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단박에 앗아갔다. 달팽이가 살았으면 내가 달팽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축생의 업을 대신 조금이라도 정화시켰을 지 모른다. 또는 축생을 위해 불법佛法으로 기도하거나 선업을 쌓아 그를 인도로 이끌었을 텐데 그러긴커녕 소중한 생명을 무심코 거두었다.


잘못 내지른 발걸음에 우울해진 마음을 Stevie Wonder가 추슬러줬다.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해줘 감사하다는 구절에서 그루미 한 기분이 풀렸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노력하겠다는 다짐하는 'Higher ground(261위)'는 공교롭게도 그가 교통사고 나기 나흘 전에 발표된 곡이다. 스티비 원더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앞선 트럭에 실린 통나무가 차량을 덮쳐 중태에 빠졌다. 나흘간 사경을 헤매다가 매니저가 이 노래를 들려주자 의식을 회복했다는 믿기 어려운 일화가 있다. 그가 높은 곳에 도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다진 것처럼 나도 심기일전해 달팽이의 명복을 빌었다. 누구였든지 간에 부디 죄를 씻어 다시 환생하라고. 달팽이가 남긴 업을 기꺼이 내 어깨에 얹어 대신 선업을 쌓으며 살아가겠노라고.


Stevie Wonder - Higher Ground(1973년, 261위)


어제 더위가 예사롭지 않아 처음 반팔을 꺼내 입었다. 이른 아침엔 다소 쌀쌀했지만 팔토시를 해서 걸을 만했다. 태양이 강렬히 내리쬐나 바람이 솔찮게 불고 옷이 얇아 확실히 기력 소모가 적었다. 무성한 그늘도 체력을 세이브하는데 일조했다. 새삼스레 그늘이 고마웠다. 태양 살인을 한 뫼르소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된다. 엔탈피와 엔트로피의 상반 관계와 달리 빛과 어둠은 서로 공존하는 정正의 관계같다. 태양빛이 강해질수록 그늘이 짙어지니 말이다. 반팔과 바람과 그늘의 삼위일체 속에 배낭 가득한 행장이거늘 동키를 보낸 어제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발걸음이 산뜻한 까닭이겠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영국 할머니. 한 시간 후 바에서 다시 만났다. 영국인답게 밀크티를 직접 내려 마시더라. 호빗 땅굴 같은 저장소가 무척 아담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절반을 걸었다. 이를 기념하려고 사아군Sahagún의 순례자 성모 성지Santuario de la virgen peregrina 박물관에서 반주증을 발급받았다. 절반을 완주했다는 공식 인증서는 아니다. 성지 박물관을 방문했다는 증서의 문구 중 산티아고 순례길의 중심절반인 레온의 땅 사아군을 통과했다는 글귀가 있어 흔히 반주증이라 부른다. 정식 인증은 아니지만 흐뭇했다. 780km를 어느 세월에 걷나 싶었는데 하루하루 지나 벌써 절반에 이르렀다. 성당이 보이는 카페 마당에 앉아 우보만리의 덕업을 쌓고 우공이산 하듯 읽은 책으로 산을 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했다.


여느 길손처럼 평범할 우리 남매의 고행이 딱히 감동적이랄 건 없다. 하지만 오늘도 까미노에서 마주친 특별한 나그네들의 고된 걸음에 감동받았다. 다리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지만 의연하게 한 발자국씩 내딛는 분, 팔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배낭을 메고 더디어도 쉬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부엔 까미노를 전하며 힘내시라, 끝까지 완주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시라 응원했다.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자기 그릇에 알맞게 담아 하나라도 흘릴세라 신중하게 한 걸음씩 나가는 까미노. 순례길의 또 다른 모습이자 그토록 순례를 열망하던 순례자들이 체험하길 바라 마지 않는 고행의 참모습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길을 나선 지 두 시간 만에 던전입구를 통과했다. 그늘로 무장을 하고 갑옷을 업그레이드하여 어제보다 발걸음이 편했다. 사아군 순례자 성모 성지 박물관에서 반주증을 받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전생에 지극히 깊은 업을 쌓았나 보다. 수원 사시는 K 교장선생님 부자와 사흘째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오후 1시 넘어 도착하여 개인 정비 후 리셉션 겸 식당에서 쉬던 중 이제 막 도착한 두 부자를 만났다. 며칠 전에 안 사이지만 반가운 마음에 웃음지어 맞이했다. 저녁을 같이 하자 제안했더니 반색하신다. 아들인 K 군의 세레명이 레오다. 친한 후배 세례명과 같아 더 친밀히 느껴졌다. 낯이 좀 익자 그간 자제하던 말문을 텄다. K는 지방 민영 방송국 아나운서였는데 계약기간 2년이 지나 퇴직했다고 한다. 재취업을 준비하던 중 같이 순례하자는 아버지의 제안에 무작정 따라왔단다. 케이블 TV와 OTT간의 경쟁이 격해져 지방 민영 방송국의 재정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무리 돈 드는 제작 편성을 최대한 자제하고 판관비 절감에 혈안이라 해도 아나운서 같은 전문직마저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간단치 않은 현실이 못내 아쉽다. 섣부른 위로는 실례일 거 같아 까미노에 선 이들이 공감할 만한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빌어 격려했다.


'성공은 끝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속할 용기이다'


구직을 앞두고 있어 순례가 부담되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아빠 따라오기를 백 번 잘했다며 지금은 딴 생각하지 않고 순례를 즐기는 중이라 했다.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반추해봐도 집중하여 노력하고 스스로를 조여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그러나 재충전할 시기도 이에 못지않게 필요한 법이다.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된다. K 군은 지금이 조일(tighten up) 때가 아니라 여유를 부릴(loosen up) 시기라 여겨졌다. Archie Bell & Drells이 노래한 'Tighten up (265위)'은 순례를 마치고 시작해도 충분하다 일렀다. 대신 일단 자신을 조이기 시작하면 지옥에 이르게 하는 유혹엔 빠지지 말라 당부했다. 악마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한 법이라 내가 당했던 것처럼 일단 유혹의 늪에 빠지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록 밴드 AC/DC의 리더 본 스캇은 호주 캐닝 하이웨이Canning Highway에 인근한 술집의 단골이다. 근처에 신호등이 없어 교통사고가 빈발하여 단골들은 이 술집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라 불렀다. 술 한잔 마시려는 유혹에 빠져 자칫 지옥에 이른다는 의미다. 젊은 시절 나도 악마의 꾐에 혹해 소일했다. 아니 여태껏 지옥행 열차에서 광일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K 군보다 스스로에게 조언할 일이다. 사무엘 존슨은 습관의 사슬은 너무 약해서 느낄 수 없지만, 너무 강해지면 끊기 어렵다 했다. 유혹도 습관처럼 현혹되면 끊어 내기가 쉽지 않다. 주 기도문의 한 구절처럼 아예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의지박약한 나라면 말이다.


AC/DC - Highway to Hell(1979년, 254위)

K 군 왼쪽 발꿈치에 물집이 잡혀 하루 더 연박해야겠다는 교장 선생님 말씀에 샤모아 버터크림 몇 팩을 드렸다. 순례를 떠나기 전 후배 S 원장이 피부 마찰에 특효라며 물집 방지용으로 한 박스를 선물했다. 귀한 선물이라 봉인해두고 누나와 바셀린 크림으로 버티던 중이었다. 비상 약품이 없는 것 같아 물집방지 밴드와 알코올 솜, 방수 밴드 등도 몇 개 챙겨드렸다. 식사를 마친 후 시범삼아 크림 하나를 개봉해서 물집 주변에 바르고 물집방지 밴드를 덧대 주었다. 아침에 길바닥에 떨어진 폴로 랄프로렌 밤색 모자를 주인 눈에 띄도록 배낭 앞에 매달고 다닌 게 선업의 가벼운 브런치였다면 K 군에게 해준 응급조치는 감히 덕행의 만찬이라 칭할만하다. 어쩌면 이 모두가 이른 아침에 저지른 업을 씻고 불시에 봉변당한 달팽이를 대신해 자비를 베풀라는 준엄한 천명의 소산이었는지 모른다.


오후에 하릴없어 자료를 들춰보려 리셉션 책상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책상을 테이블 삼아 'ㄷ' 자 소파에 앉아 있던 투숙객들 중 한 여성 순례자가 수업 받을 준비를 다 했다고 농담을 건넨다. 내가 선생님 같다면서. 오케이 그러면 이제부터 시작한다고 답했다. 일순간 나를 포함해 주변에 앉은 순례자 모두가 빵 터졌다. 절반에 이른 순례 중 내가 내지른 가장 쾌활한 웃음이었다. 순례자들에게 내가 완전히 녹아들고 있음을 절감했다. 절반이 곧 시작이니 나의 진정한 순례는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다.


수원에서 오신 K 교장선생님 부자를 만나 잠시 같이 쉬었다. 새 걸 껴왔는데도 400km 넘게 걸어 다 헤진 고무발. 식품점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례자들. 다들 빵 터진 리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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