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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차] 2857번 버스

Planet Rock -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꿈

by 여운설

2023년 5월 31일 만시야 델 라스 물라스 - 레온 18.5km


새벽 말미에 뜻밖의 꿈을 꿨다. H은행 투자전략부장인 과 동기 K가 급한 부탁을 해왔다. H은행의 미래발전전략을 기획하는 과제를 맡았다는 것이다. 염두에 둔 주제를 물었다. 친구는 아무래도 핀테크를 강조해야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기존에 설립된 핀테크 자회사 '핀크'의 누적 적자 규모가 1천 억원에 달했다. 하여 핀테크 신규 진출 보다는 핀크의 개선과 사업성 확보 방안을 고민해 보라 일렀다. 뭐라도 성공해야 그룹의 핀테크 전략이 탄력 받지 않겠냐면서.


구체적인 전개 방향도 제시했다. 미국의 신용 플랫폼 벤처, 업스타홀딩스를 예로 들었다. 은행이 가진 기존 신용평가 모델은 깡그리 무시하고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계량신용 모델을 새롭게 구축한다. 이를 '핀크'의 기존 대환대출 서비스와 연계시키되 누구나 접근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신용모델로 차주마다 신용 위험을 측정하여 각자에 걸맞는 최저 대출금리를 제시하면 차환 대출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시너지가 기대되며 핀테크의 핵심은 닫힌 시스템이 아닌 오픈 플랫폼이어야 한다는 강조와 함께.


꿈속에서 했던 내 제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중요치 않다. 떠오르는 대로 얘기한 것일 뿐이니까. 단지 꿈결에 한숨 돌렸다고 안도하는 친구의 웃음에 족했다. 내게 힘이 되어준 동기들에게 보답한 듯 하여 기쁠 따름이다. 꿈에선 현실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가능하다. 꿈은 일종의 보상기제다. 무의식적으로 바라마지 않던 욕구가 꿈을 통해 구현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희망 없는 삶은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인생과 다름 아니다. 꿈이 꼭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꿈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비몽사몽 중 친구를 도와 부풀었던 만족감이 곧 사그러졌다. 앞 베드를 쓴 독일인 부부가 잘 가라는 배웅에도 고개만 힐끔 돌리고는 못 들은 척 일언반구 없이 나가 버렸다. 전날 만찬 때도 투명인간 취급하듯 우리에게만 말 걸지 않던 기억이 겹쳤다. 기분이 상했다. 푸엔테 비야렌테Puente Villarente 근처에서도 그랬다. 분기점에서 지도를 보고 있길래 그냥 직진하라 일러줘도 고맙단 말 한 마디가 없다. 아내가 겸연쩍은 눈웃음을 살짝 비춘 게 전부다. 남편은 시종일관 무시했다. 공치사받자는 건 아니지만 썩 개운치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가 싶었다. 그게 아니면 딱히 그들에게 실수한 건 없으니 한국 순례자나 한국에 대해 좋지 못한 기억이 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설령 인종차별이라 쳐도 마음에 담을 일은 아니다. 살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지 않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종종 인종차별을 겪은 경험담을 익히 봤던 터라 그러려니 넘기자 했다.


사자굴을 향한 아침 첫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은 사람에 대한 상념에 젖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불편함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중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장년의 한국 여성, A의 사연이다. A 씨는 비슷한 연령대의 미국 여성, B와 자주 길에서 마주치거나 같은 숙소에 머물렀는데 B가 그녀를 꺼리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알베르게 만찬에서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요리가 나오기 전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A가 영어를 잘 못한다며 짧게 얘기했다. 그러자 B가 주위 사람 들으라는 듯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 순례냐며 조소했다는 것이다. A는 결례라 여겼지만 그냥 넘겼다. 이어 B가 와인을 동석한 순례자들에게 따라주더니 바로 옆에 앉은 A만 패스하더란다. 참았던 부화가 치밀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 했지만 식대가 아깝거니와 어찌 되었건 시장기는 달래야겠기에 애써 견뎠다. 샐러드가 나왔다. 차례대로 그릇을 받아 자기 접시에 담은 후 옆 사람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B의 차례였다. 그녀는 자기 접시에 담고는 A를 건너뛰어 샐러드 그릇을 내려 놓았다. B가 선을 넘은 것이다. 이미 엉망이 된 기분에 저녁 먹으면 얹힐 것 같은 A는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에 능숙하지 않지만 네가 무시할 만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너는 영어가 모국어일지 몰라도 그간의 언행이나 행색으로 보아 나보다 잘난 지 못한 것 같은데 왜 그리 유난을 떠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앞으로 나 보면 조심해라. 핸드폰 스피커로 좌중이 다 듣게 한 연후에 자리를 떴다. 홍당무가 된 B의 얼굴을 잔뜩 째려보면서.


나라면 굴욕적이어도 스피커를 틀지는 못했을 것 같다. 조용히 왜 그러냐며 해명을 요구하는 정도에 그쳤을 공산이 크다. 어느 일방의 언급만으로 B에게 인종차별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A가 그냥 싫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해도 지나친 결례였음은 분명하다. 도를 넘은 B에게 항의한 A의 대응을 지나치다 보기 어렵다. A로선 그 순간 최선을 다해 부당한 처사에 저항했으니 말이다.


그녀의 기지에서 어릴 적에 읽었던 ‘2857 버스’를 상기했다. 로자 파크스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이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백화점에서 일하던 그녀는 퇴근길에 2857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 뒷쪽 유색인 지정칸의 빈 좌석에 앉았다. 몇 정류장을 지나 앞쪽 백인 전용칸은 만석이 되었다. 또 다른 정류장에서 백인 네 명이 탔다. 버스 운전사가 흑인 전용칸으로 가서 백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라고 했다. 당시 미국에는 버스에 탑승한 흑인 승객을 차별하는 법이 존재했다. 버스 기사는 백인이어야 하며 흑백 좌석을 분리해야 한다. 맨 앞 네 줄은 오로지 백인만 앉되 흑인 전용칸에 앉은 흑인은 서 있는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앉아있던 세 명의 흑인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자는 이를 거부했다. 백인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다며 한사코 버텼다. 화가 난 버스기사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했고 로자는 체포되어 끌려갔다. 지역의 흑인 사회가 동요했다. 재판이 열린 날, 시민들이 항의 차원에서 버스를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재판 결과 법원은 그녀에게 벌금 10 달러와 소송비용 4 달러를 선고했다. 부당하다 여긴 그녀는 곧장 항고했다. 흑인 단체는 무명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내세워 382일간 무저항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어나갔다. 일 년이 지나 대법원은 인종차별과 분리행위가 위헌이라 판결했다. 하지만 차별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거센 저항을 가라앉히기엔 너무 늦었다. 조직화된 흑인 인권 운동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로자 파크스가 흑인 인권의 애드발룬을 띄운 지 20년이 채 되지 않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의 아프리칸 아메리칸과 라틴 청년들의 힙합 물결이 백인들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빈곤과 차별, 경찰의 부당한 폭력, 그리고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린 힙합 가사에서 흑인들의 처지를 공감하게 되었다. 힙합의 강력한 메시지는 백인 사회가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데 일조했다. 백인 청소년들이 힙합에 열광하며 흑백의 문화적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연대의 싹이 트이고 흑인 사회가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문화의 힘은 위대하다. 음악이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해소하는 특효약이었으니 말이다.


힙합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오랜 꿈을 이뤄주었다. 언젠가 미국이 일어나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신념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되는 꿈을 말이다. 'Planet rock(237위)'은 위대한 힙합 명곡 중에서도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1982년 Afrika Bambaataa와 Soulsonic Force가 싱글로 발표한 이 곡은 전통적인 펑크나 소울 샘플링에서 벗어나 최초로 전자 음악을 샘플링했다. 힙합에 독일 크래프트베르크 그룹의 전자음악을 채용한 것이다. 이 노래를 시발탄으로 힙합과 R&B, EDM 등 팝송의 다양한 장르에서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이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다. 이후 디제잉을 장착하고 브레이크 댄스로 중무장한 일렉트로닉 힙합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랩으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열광시키기에 이르렀다.


Afrika Bambaataa and the Soul Sonic Force - Planet Rock(1982년, 237위)


‘2857번 버스’처럼 갈등이 사회 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무사히 종착지에 이르지 못한 채 비극적인 파국으로 치달은 사례들도 많다. 나치가 조장한 '아리안 민족주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 그중에서도 북유럽의 게르만 민족이 지구상에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 맹신했다. 인종적으로 우수한 특성을 지닌 위대한 아리아인이 인류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 독일 사회에서 게르만 순수혈통을 위협하는 유대인과 집시, 슬라브인을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여 박해했다. 아리안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거리낌없이 열등하다 여긴 민족들을 인종 청소하는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나치 사상은 배타적 민족주의가 극에 달한 파시즘이다. 나치즘은 보편적 민족주의를 부정한다. 모든 민족이 평등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민족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민족자결과 자주국가를 형성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게르만 민족의 세계 정복이란 광기에 눈이 먼 나치는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란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참극을 자행했다. 그런데 열혈 나치당원이나 히틀러를 추종하는 광신도만으로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감당키 어렵다.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겉보기에 선량하지만 스스로 선악을 가리지 않고 상부의 비인도적 명령을 아무 생각 없이 충실히 따른 부역자들의 삐뚤어진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나 아렌트가 지목한 '악의 평범성'이야말로 대학살의 주범이다.


내가 만난 독일인 남편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믿고 싶다. 까미노에 선 인종차별주의자, 배타적 민족주의자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악의 평범성에 경도된 이라 여기고 싶지도 않다. 살다 보면 괜히 첫인상부터 정이 안가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나 역시 이런 편견에 사로 잡힌 경우가 없지 않은데. 독일인 부부도 마찬가지라 여기기로 했다. 그도 아니면 남에게 무관심한 B형 남자겠거니 치부하기로 했다. 침소봉대해 고결한 순례의 의미를 허물고 싶지 않다. The Byrds는 자신에게 싫증난 여인이 떠나 주길 바랐다. 'I’ll feel a whole lot better(234위)'의 당신이 떠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란 구절처럼 독일인 부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기분이 점차 되살아 났다.


보편적 민족주의가 지향한 평등은 까미노 어디서나 쉽게 체험 가능하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라 하여 건장한 젊은이들보다 더 먼 거리를 걷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체구가 좋다 해서 두세 걸음을 한 번에 뗄 수 없다. 그러나 한 발자국씩 내딛는 조건은 같다지만 다리가 불편한 덴마크 아주머니와 한 눈에 봐도 무거운 배낭을 멘 헝가리 할머니의 까미노를 신체 건강한 청춘들의 기행에 비할 순 없다. 그럼에도 이 분들의 미소가 더 환히 빛나는 건 장애와 나이가 주는 핸디캡에 굴하지 않고 순간의 고통을 이겨낸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걸음씩 더해 레온까지 찬찬히 진보를 이뤄낸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그렇다. 그녀들의 걸음처럼 진보는 무수한 이들이 누적한 역사의 공덕으로 만들어진다. 미국 시민들이 남북 내전의 대가로 얻은 명목적인 노예제 폐지에 만족하는데 그쳤다면 어땠을까? 관습상 아직도 백인우월주의가 미국 사회에 팽배할런지 모른다. 로자 파크스와 같은 작은 저항들이 모이고 쌓여 역사의 진보를 이루었다. 흑인 인권의 한계를 넓히는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까미노에서도 고행의 진보를 맛볼 수 있다. 순례에 적응하는 초반엔 20km가량이 걷기에 적당했다. 이를 훌쩍 넘기면 제법 피로했다. 그런데 일정상 어쩔 수 없이 30km 가량을 한 두 번 걸으니 이제 20km 정도는 가뿐하다. 동네 마실 가는 듯해 걸은 거 같지 않다. 이처럼 진보는 어느 날 갑자기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다. 힘들게 마련한 여건 속에서 조금씩 한계에 적응하여 한 뼘 한 뼘 지평을 늘려나감으로써 진보를 이룬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 술은 뜨는 데 의의가 있지 그 자체로 배 부를 수 없다. 지난날 내 젊음도 마땅히 그래야 했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스무 해 전에 타계한 Ray Charles는 음악적 진보를 이룬 싱어 송 라이터였다. 그가 레날드 리처드와 공동으로 작곡한 'I got a woman (235위)'는 팝 역사상 중요한 시금석 중 하나로 최초의 소울이란 영예를 얻었다. 소울 음악은 흑인의 정서와 영혼을 대변한다. 소울 가수들은 종교적인 가스펠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가창법을 구사하며 백 보컬과 교감을 나눈다. 블루스의 감성을 밑바탕에 두되 R&B의 강한 리듬과 멜로디에 재즈의 풍부한 화성을 혼합한 장르적 특징이 있다. 레이 찰스는 가스펠 곡조에 블루스의 감성과 세속적인 가사를 결합한 소울의 선구자였다.


Ray Charles - I Got a Woman(1954년, 235위)


상념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레온에 가까워졌다. 고속도로 옆으로 난 순례길을 따라 언덕에 올랐다. 저 아래 너른 평원에 카스티야레온주의 중심지 레온이 가득 펼쳐져 있다. 부르고스에서 시작한 178 km 메세타의 절정이 갈무리되는 곳. 아침에 겪은 유쾌하지 않은 끈적한 기억은 롤링 스톤지가 꼽은 명곡으로 바짝 말려 탈탈 털어버린 지 오래다. 헝가리 할머니와 사이좋게 레온시 외곽에 들어섰다.


오래된 성당 종탑 자리에 나무덤불로 지은 황새집이 얹혀 있다. 이곳 황새들은 겨울이 되면 이베리아 반도를 남하해 지브롤터 해협과 사하라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3,000km를 순례하는 황새는 우두머리를 따라 무리 지어 난다. 우두머리라 해서 마음대로 무리의 이동을 정할 순 없다. 무리의 대다수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대신 일단 이동이 결정하면 나머지는 우두머리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무리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대로 따른다. 우두머리가 안전하고 먹잇감이 많은 곳으로 이끌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두머리는 바람을 잘 살펴야 한다. 순풍을 타야 무리가 부담 없이 날 수가 있다. 간혹 역풍을 거스르는 경우에도 황새무리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우두머리에게 보낸 신뢰를 거두지 않는다. 우두머리가 무리의 믿음을 깬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해였으면 좋을 끈적거리는 기억을 탈탈 털어내며 사자굴을 향해 나간다. 덴마크 아주머니와 잠깐 행보를 같이 했다. 그녀도 무사히 완주하기를 기원했다.


황새무리가 수천 킬로미터를 거뜬히 날아가는 원동력은 서로 믿는 신뢰의 행진에 있다. 그들은 하늘을 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누구를 책망하거나 의심하는 번민에 사로잡히진 않겠지.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에게 황새의 신뢰가 가득하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황새 무리에게도 안전하고 평안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를. 그리하여 우두머리의 바람대로 어느 한 마리 낙오되지 않고 건강하게 겨울집으로 귀향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드디어 용기 없는 사자가 겁도 없이 사자굴 한복판에 들어섰다. '라이온 킹(1994년)'의 스카를 닮은 간악한 사자를 만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레온 대성당이 그리 멀지 않은 카푸친 수도회가 운영하는 성 프란치스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레온대학과 여타 교육기관 소속 학생들이 기숙하는 곳이라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깔끔하고 편의시설이 풍족하다. 만나는 직원들마다 순례객들을 환대하는 진심이 전해진다. 아침 해프닝으로 잃어 버린 나그네의 행복을 덴마크 아주머니와 헝가리 할머니, 당나귀 가족과 명곡, 그리고 황새와 알베르게의 친절한 스태프들이 되찾아 주었다. 너무나 감사하다.

주택가 널찍한 마당에 사는 당나귀 일가, 레온을 향해 헝가리 할머니가 묵묵히 앞서 나간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황새가 종탑위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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