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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27. 2023

최소한의 한국사

역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책상에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역사 사전이 있었는데 교과서에 단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비법이었다. 이 역사 사전 말고 당시 거금을 들여 어머니가 사주신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전집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역사에 대해 어려움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도 과거의 사건을 연도부터 외워야 하는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고구려 멸망 시기 668년,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우리 민족 역사 상 가장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기이다.  그 광활한 영토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발해 이후 다시는 그 땅을 지배하지 못했던 역사적 아쉬움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고대사로 갈수록 역사적 기록은 물론 유물조차 남아 있지 않고, 설령 남아 있다 한들 훼손되어서 정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을 큰 나라로 섬겼고, 두 번의 왜란으로 인해 약탈당하고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의 문화제가 도굴과 해외 반출로 인해 조상의 유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고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길림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에 있는 <임나일본부>라는 말을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하기 위해 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글자를 훼손시켜 알 수 없게 만든 만행은 왜국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켜 자신의 조상을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추악한 욕심을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역사적 식견의 유무에 따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편찬되었는데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기전체로 작성하였다는 말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전체(紀傳體)라는 것은 본기(本紀)의 기(紀)와 열전(列傳)의 전(傳)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표현하면 구성에 관한 말이다. 기전체는 본기, 세가, 표, 지, 열전으로 구성되며 본기는 제왕의 역사, 열전은 인물의 전기나 이민족의 전기를 기록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이런 단어를 마주하게 되면 단순히 암기하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되며, 이런 감정이 반복되면 역사를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는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삼국사기가 기전체로 작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삼국사기를 온전히 읽어 보는 도전과 삼국시기 속에 기록된 내용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이해가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될 때 진정 역사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라는 말은 삼국사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삼국사기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평정한 후 김부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28권의 본기 중 신라 12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의 구성만 보아도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기에 신라와 적대적인 관계였던 백제에 대한 기록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축약하여 기록하였다.


 물론 660년에 멸망해 버린 망국의 역사를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 적었겠지만 공평하지 못한 편찬 태도에 대한 불쾌감은 존재한다. 특히 고려 초기까지 유민으로 들어와 고려에 흡수된 발해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 것은 북방영토를 영원히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고구려 멸망 다음으로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다.


 초기 한성 백제를 시작으로 한강 유역을 거점 삼아 해상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유고한 역사를 단 6권에 담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이 때문에 백제의 행정구역인 담로에 대한 비밀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았으며 22개의 담로를 두었던 백제의 한반도 밖의 영토가 어디였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백제의 왕족으로 일본의 담로에서 태어나 훗날 왕이 된 백제 무왕의 역사적 스토리도 백제의 행정 구역인 담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그 출발을 알 수 없기에 사실에 기반한 역사적 스토리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백제는 특히 사이가 좋지 않은 고구려 역사서에서 백잔(백제를 낮춰 부르는 말)으로 종종 표기되며, 삼국 중 유일하게 신화가 없는 나라이기도하다.


 백제의 건국 신화가 없는 이유는 백제 왕조의 성씨가 부여씨로 백제의 온조왕이 고구려의 시조, 주몽왕의 아들이며 아버지가 신화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에 큰 힘이 되었던 주몽의 둘째 부인이었던 부여의 귀족 연타발의 딸, 소서노는 유리왕이 나타나자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정처 없이 향했다.


 한강 유역에 이르러 온조는 이곳의 도읍을 세워 십제라 하였고 그의 형은 미추홀(지금의 인천)에서 나라를 세웠으나 그 땅은 농사가 쉽지 않아 얼마 뒤 십제에 합류하였을 때 백제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부터 내려온 장자 승계의 원칙을 깬 능력 있는 차남이 바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인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지 못한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은 차고 넘치는데 온통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에 더욱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신라의 삼국통일 주역인 화랑도 역시 원화에 대한 이야기를 알면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인데 화랑의 기원은 원화로 그 시작은 남자가 아닌 여자를 뽑아 인재를 모으는 제도였다.


 이것만 보아도 당시 사화는 남성 중심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최초의 원화인 남모와 준정의 질투로 외모가 아름다운 남자를 뽑았다고 전해온다. 특히 경주의 황성공원은 화랑들이 무예를 연마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원 한편에 있는 <찬기파랑가>를 통해 신라 경덕왕 때 승려인 사다함이 느꼈던 화랑의 멋을 지금의 나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역사는 단편적 사실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종합적인 이해를 통해 배워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책상과 교실 속에서 배우는 역사가 아닌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하는 역사적 장소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역사 공부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단편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결과와 평가의 종합 선물 세트이다. 그래서 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IT발달로 역사를 학습하는 방법도 종합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매소성과 기벌포 전투로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대를 물러가게 한 전투장면부터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비롯한 한국전쟁까지 VR체험을 통해 느낀다면 절대 잊지 못하는 역사 공부가 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 몸으로 배우는 역사 공부만큼 확실히 뇌리에 남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를 역사답게 배워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최태성, 황현필 선생님처럼 전문적으로 역사를 배우기는 어렵겠지만 역사 앞에서 당당해질 수준까지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과거의 인물이 선택한 결과가 가져온 변화를 배움으로써 역사적 실수가 두 번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참된 역사를 마주하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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