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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Mar 20. 2024

엄마 축구 다녀올게

뚱다리의 쓸모

결혼 전 "축구"라고 하면 2002년 월드컵 밖에 몰랐다. 그런 내가 아들 둘을 키우며 축구를 '사교육'의 카테코리로 분류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축구 수업을 들었고 입으로는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말하며 발로는 헛발질을 했다. 보노 선생님의 수업과 특화된 인성교육은 너무나 훌륭했지만 아이들 재능의 한계 탓으로 수업료 납입일이 되면 


'이거 계속 다녀야 하는 거 맞나'


 하고 고민하게 되는, 지출이 많은 달이면  1순위로 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사교육이 축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친구 엄마에게 맘스사커에 대해 들었다.


"와, 대단하시네요!"


눈을 반짝이며 맘스 사커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마치 북극 어딘가에 위치한 얼음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는 뜻이다.  그렇게


 "맘스 사커에 한 번 나오세요!"


하는 말을 지나가는 인사로 흘려 들었다. 그리고 그 인사를 두 번째로 들었을 때 혹시 진심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세 번째로 들었을 때는 진심이었어! 하고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 아무도 모르게 그녀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 발언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되어서  조금 초조해졌다.  




 그때 마침 나는 내 몸이 소파에 붙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급속도로 불어 가는 몸무게가 당황스러웠고 무거워진 몸만큼 무거워진 마음이 날이 갈수록  일어날 수 없게 했다.

 점점 더 움직임이 느려져가는 동안 핸드폰 속 사람들은 분주하고 화려해 보였다.  


'한 때는 나도...'


같은 말을 혼자 입안에서 굴려 볼  뿐이었다. 불어버린 몸을 소파에 모로 누인 채 40이라는 나이를 먹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김없이 소파에 붙어있던 어느 날 축구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 축구에 대해 얘기하다가 맘스사커를 권하셨다.


 거절할 이유는 많았다. 어디서부터 얘기할까 눈을 굴리다가 나의 뚱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마르고 청순했던(?) 여중 여고 시절부터  늘 못나고 알찬 감자 같던 다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축구하기에 딱 좋은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뚱다리가 드디어 쓸모를 찾는 것은 아닐까 운명론자인 나는  알 수 없는 운명의 이끌림을 느끼고 있었고


"체험 수업만 한 번 나와 보세요."

라는 말에 마침내 네 하고 말해 버렸다.








그렇게 체험 수업에 가기로 한 당일 아침이 되자 내 발목을 붙잡는 소파를 떼어내느라 써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별해야 했다.


 소파를 밀어내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운동화를 신으러 가는 이 천 리처럼 느껴졌다.





 실내 축구장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이미 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곳. 아이들이 헛발질하는 모습을 보다가

사교육비를 생각하며 돌아서서 나오던 그곳. 이전까지 나는 늘 관람석에 있었다.


 처음으로 그물을 젖히고 조심스럽게 코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운동은 몸풀기로 시작되었다.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다는 맘스사커 회원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헤어진 소파 생각이 안 날만큼.


그렇게 '엄마 축구 다녀올게'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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