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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4. 2022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수면장애에 배수아의「기차가 내 위를 지날 때」를 처방합니다

 1. 잠 못 드는 밤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독서를 포기해버렸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y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석사논문을 거의 완성해서, 2학기가 시작되면 이어질 논문발표와 심사를 차질 없이 마칠 계획이다. 동시에 취업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휴일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따기 위해 시험을 보러 다니고, 직무테스트와 면접도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과중해 보이는 이 일들이 y의 수면장애의 원인은 아니다.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서도 y를 잠 못 들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만족이다. 부모님은 y의 진로에 대해,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도, 취업하는 것도, 혹은 결혼을 선택하는 것도 반대의견이 없다. 중산층 가정의 맏딸인 y에게는 운 좋게도 선택지가 많다. y를 잠 못 들게 하는 괴로움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모두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이런 불만족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기에 y는 괴롭다. 너무 생각이 많은 자신이 피곤하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몸이 고달프다. 학문의 길을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이지 않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독립적인 성인이 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이 미친 세상에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y는 이런 생각의 회로가 작동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날밤을 새게 된다. 그러다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이고 또 하루를 시작한다. 

  ‘y의 예민함은 어떻게 해야 빛이 날 수 있을까?’ y를 만나고 나서 내게 든 생각이다. 나는 이 질문을 가지고 배수아의 소설을 읽었다. 배수아의 여성인물들은 독특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도발적이고 발칙하며 영리하고 예측불허이다. 그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온 특징은 그녀들의 주체성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독특한 욕망을 포기하거나 우회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간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의 ‘김씨의 부인’은 세 개의 도시에 있는 세 개의 방을 갖고 싶어 한다. 하나는 서울, 하나는 신혼여행을 갔던 상하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거기가 어디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도시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는 세 개의 도시에 있는 세 개의 방을 상상한다. 그녀에게는 세 개의 풍경이 동시에 펼쳐지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풍경이 바뀌어 가기도 한다. 세 도시의 그녀는 각기 다른 신분증과 이름을 갖고 다른 언어를 쓰지만, 서로 다르면서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세 개의 도시에 있는 세 개의 방은 연극무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메타포하고 있다. 각기 다른 신분증과 다른 이름과 다른 언어를 쓰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생애주기별로 주어진 역할이나 사회적 역할을 비유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우리는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가며, 그날이 그날 같은 반복적인 하루를 살아갈 수도, 어느 날과는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다. y가 잠 못 드는 괴로움은 이런 게 아닐까? 그렇고 그런 반복을 하는 어른이 될 것 같은 우울함. 또는 커리어우먼, 주목받는 학자, 자유로운 예술가, 신념 있는 사회운동가 같은 ‘전형’적은 어른은 되고 싶지 않은 조급한 초조함. 나는 y가 우울함보다는 조급한 초조함을 선택했으면 한다. 



  2.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그것은 왜일까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멍하니 서 있는 김씨의 부인에게 다가와 목적지를 물었다. 그리고 반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목적지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가 말하는 사이에 기차는 한 대 도착했다가 잠시 정차 후에 다시 떠났다. 그는 말했다. 김씨의 부인이 ‘반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다가 기차를 타면 된다고. 플랫폼에 걸린 기차 시간표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러나 만일 기차가 연착을 한다면? 김씨의 부인이 원래 타고 왔던 기차도 예정시간보다 십오 분이나 늦게 바로 전 역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약속된 ‘반시간 정도’ 후에 김씨의 부인이 타야 할 기차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한다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기차의 몸통 어딘가에 노선이나 기차 번호가 씌어 있지 않다면? 아니면 빠르게 달려와서 우뚝 멈춰버릴 기차에서 김씨의 부인이 그 표시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기차가 멈추어 섰는데, 기차의 행선지가 가장 앞쪽의 기관차 앞유리창에만 붙어 있다면? 그러면 김씨의 부인은 무겁고 커다란 가방을 거추장스럽게 끌고 가장 앞쪽으로 가서 그 표시를 확인한 다음에 기차에 타야 하리라. 그러나 과연 기차가 이렇게 작은 역에서 그렇게 오래 정차하고 있을지? 방금 지나간 기차도 겨우 삼십 초 남짓만 멈춰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시간표상에 나와 있는 정돈된 형식 말고, 실제로 지금 눈앞에 도착해 있는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것을 알려주는 정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그러므로 기차가 도착할 때 어떤 부분을 유심히 눈여겨봐야 하는지 김씨의 부인이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문학동네, 2017년, 463~464쪽)     


  한때 김씨의 부인이 집을 뛰쳐나올 정도로 사랑에 빠졌던 ‘거리의 예술가’는 시간이 꽤 흐른 다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이 부인과 헤어졌으며, 지금 어디에서 공연하는지 알리는 편지이다. 거리의 예술가를 찾아가는 그녀의 마음은 초조하다. 거리의 예술가의 공연은 일정이 있기 때문에 때에 맞춰 찾아가지 못하면 못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고 판단하고 영영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김씨의 부인은 정신을 차리고 잘 찾아가고 싶지만, 난데없는 오류와 실수로 제 시간에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때,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르면 이런 상황 자체를 없애고 싶은 마음에 강렬하게 사로잡힌다. 무엇이 나를 이런 긴장에 몰아넣었는지 원망하게 되고, 그냥 모두 그만두고 싶어진다. 내가 했던 무수한 중도포기들도 이런 긴장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 후에는 권태가 찾아왔다. 무수한 하루들 가운데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건 이런 긴장감에 굴복당하지 않고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길로 나아간 하루일 것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플랫폼에서 우왕좌왕 당황하는 그녀의 초조함을 읽으며 나는 초단위로 조여 오는 긴장과 불안을 추체험했다. 그리고 조금 속이 쓰렸다. 내가 놓쳐버린 선택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눈에 밟혀서. 


  그러나 정말로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추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가능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중에 불현 듯 기차에서 내릴 것이고, 기차 시간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역무원의 말도 알아 듣지 못하고, 소중한 편지나 기차표를 잃어버리고, 그리하여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입술을 깨물면서 헛되이 절망하고, 그리고 되돌아가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혀가 낯선 언어 앞에서 굳어버리는 바람에 어느 순간인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마법의 몸짓까지 잃어버린다면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빠르게 털실이나 헝겊, 마분지나 양철 조각으로 바뀝니다. 색종이가 되어 흩날립니다. 그래도 어느 날인가 우리는 해변으로 놀러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즐겁게 웃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때 서로의 행복한 순간을, 그림 속을 산책하는 자가 되어 일시적으로 스쳐갈 일이 생길지는 몰라도, 나와 당신, 그리고 당신과 나를 기다리는 다른 특별한 일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같은 책, 472쪽)     


  위인용문은 김씨의 부인이 사랑한 거리의 예술가가 공연에서 낭독하는 글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그냥 ‘시적’이라고 말해버리면 아쉬운 의미의 공백을 느꼈다. 시라기보다는 친애하는 누군가가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편지에 가깝다. 그래서 이 편지를 읽고 나면, “정말로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로 그대로 멈추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가능성”을 몸서리치게 각인시키게 된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내 마음은 자동으로 조급하고 초조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오래전에 우체국에 보낸 편지가 ‘수취인 불명’의 사고를 겪고 뒤늦게라도 내게 배달된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이 편지를 곱씹으면 조급함과 초조함을 견딜 용기가 생긴다. 이미 읽었겠지만, 나는 이 편지를 부적처럼 y에게 주고 싶다.           



  3.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2년 전 겨울방학에 나는 y와 함께 6주 동안 철학강좌를 들었다. 그때 내 나이는 거의 y의 나이의 두 배였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도, y는 매주 예의 바르고 스스럼없이 내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보통 나와 같이 나이 많은 여자에 대해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불편하게 느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y는 그렇지 않았다. 올 여름에도 나는 y와 두 번 만나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수면장애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그보다는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떠들어댔다. y와 이야기할 때, 내 마음은 편하다. “그쵸, 그쵸” 또는 “맞아요, 맞아요”라고 y는 내 의견에 격하게 공감을 해준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떠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나는 이런 배려도 y가 쉽게 잠 못 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y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 있다. 

  y는 눈물도 많다. y는 감정이입이 잘 되고 공감력이 높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책을 읽다가, y는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덜 울려고 한다고 한다. 마음이 힘들어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눈물로 해결되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눈물을 흘렸다면, 그 이후에 대해서도 함께 마음을 도모할 채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눈물을 참고, 자신의 마음을 ‘단도리’한다. y는 최근에 테니스를 시작했다. 운동을 하니 확실히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덜 울고 운동하기’, y는 스스로 수면장애에 대한 해법을 찾아낸 것 같다. 여기에 나는 배수아라는 ‘지도’를 추가하고 싶다.

  배수아는 1993년 등단 이래로 지금까지 28권에 달하는 장편소설 · 소설집 · 산문집 · 시집을 출간했고, 프란츠 카프카 · 페르난두 페소아 · W.G. 제발트 · 로베르트 발저 등 자신이 사랑하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소설가와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는 배수아는, 한국에 있을 때는 번역을 독일에 있을 때는 소설을 쓰며 자신만의 모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배수아의 작품목록을 일별하며 나는 새삼 놀랐다. 90년대 말, 『푸른 사과가 놓인 국도』(고려원, 1995년)의 배수아에게 붙었던 수식어들인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 ‘지리멸렬하고 환멸적인 이야기’, ‘극단적 이단성’ 등은 당대의 문학적 풍토를 대변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90년대 말은 거대담론이 왜소해지고, 버블경제시대의 미시서사가 꽃피었던 시기였다. 2000년대 초, 『에세이스트의 책상』(문학동네, 2003년)과 『독학자』(열림원, 2004년)의 배수아는 트랜드에서 벗어나 은둔하는 수행자처럼 언어에 엄격해졌다. 그 이후 나는 배수아의 독서를 중단했다. 더 이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고, 서사가 기반이 되는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는 계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배수아는 나의 ‘안목 없음’을 여실히 입증해주며, 여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월경(越境)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독특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소설 속 여성인물들의 표본과 같다.   

   

나는 그 가방을 나 자신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행을 떠나기 전 가방을 싸는 일을 내게 맡겼고, 여행을 떠나는 날은 내가 직접 플랫폼까지 가방을 들고 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주 여행을 떠났고, 한번 여행을 떠나면 한두 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오면 나는 다시 가방을 풀어야 했다. 돌아온 할머니의 가방 안에서는 항상 특유의 묘한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것을 내가 모르는 나라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고요히 발광하는, 오묘하고 경사진 달의 영토가 그 안에 있었다.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뱀과 물』, 문학동네, 2017년, 234쪽)     


  배수아의 여성인물들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난다. 최근작 『뱀과 물』(문학동네, 2017년)에서 그녀들의 여행은 더 경계를 붕괴시킨다. 현실과 꿈, 마법과 노래, 소녀와 노인,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는 모험을 통해 그녀들은 비밀스러운 결속과 특이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낯선 곳에 이르기 위해, 눈이 멀기도 하고 선로의 침목 사이에 눕기도 한다. 배수아는 검은 두건을 쓴 마술사처럼 흑마술을 보여준다. 거기엔 잔혹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쾌락이 있고, 미(美)와 추(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드러나는 미지의 감각이 있다. 

  y가 박사과정에 진학하든, 대기업에 취업하든, 시민단체의 활동가가 되든, 나는 어떤 선택이든 응원해줄 작정이다. 대신 생각 많고 예민한 y의 취향이 무뎌지지 않는 선택이 되길 바란다. 진학이든 취업이든 y의 취향을 취사선택할 수는 없다. 배수아라는 선례가 보여준 것처럼,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모험을 기대한다. 그것은 정상/비정상, 옳고/그름, 미/추의 상식적인 판단으로부터 이탈하는 길일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은 유혹적으로 말한다.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라고. 앞으로도 배수아의 인물들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우리 앞을 지나갈 것이다. 나는 y의 가방에는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지 궁금하다. y의 가방에는 고양이가 들어 있을 것 같고, 술과 담배, 그리고 또 내가 알지 못하는 y의 취향 가득한 물건이 빈 공간을 채울 것이다. 여행을 하며 가방의 물건들은 위치를 바꿔갈 것이고, 나는 어떤 새로운 물건들이 들어가 있을지 또 궁금해진다. 그러니 한 숨 푹 자고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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