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에 전화를 받았다. 몇 년 전 회사의 고객이었던 중년 남성이었다.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는 대뜸 물었다. "아기는요?" 여보세요, 아 ㅇㅇ님이세요, 안녕하세요 까지 말하고 나서 나온 질문이다. 뭐 앞뒤도 없다. 정말 궁금하다. 임신이 뭐라고 생각하길래 이렇게 다짜고짜 물을 수 있는지. 한 해 걸러 한 번 정도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마지막 통화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투 스트라이크. 웃으며 '아직'이라고 답하면 왜 아기를 안 갖냐부터 일장연설을 들어주며 웃어야 하기에 세 번째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내가 느낀 당혹함을 돌려주기 위해 되물었다. "방금 하신 말씀 부적절한 질문인 거 아시죠?" 알 턱이 있나. 모르겠지. 그는 어버버 변명하다가 전화를 건 본론으로 넘어갔다.
결혼하자마자 누가 물었다. “아기는 언제 나와요?” 마치 분만실에서 의사에게 물을 것만 같은 질문을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아직 임신도 하지 않은 나에게 물었다. 나중에 진통이라도 오면 그때 가서 물어보시던가요…. 난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해에 출산을 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은 '오래 걸리셨네요'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안 그래도 그 소식을 엄청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한다. 내가 임신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국민 청원이라도 넣었으려나. 오래 걸렸다는 말은 무슨 기준일까. 모두 중장년 남성들이 한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과 갖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두 번의 유산 후에는 갖지 않겠다고 한동안 마음먹었다가 또다시 마음을 바꿨다. 나의 건강 상태, 우리 부부의 자금 사정, 삶에 대한 가치관, 회사 업무상황 등을 고려하느라 엎치락 뒤치락이 반복되었다. 내 임신 타이밍을 염려하는 타인의 관심은? 놀랍게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에 비해 임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임신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회사에서는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발생하므로 인력 운용 차원에서 임산부를 바라본다. 한 국가의 인구 정책에는 출산율을 조절하는 방식이 활용되므로 국가적으로 임신(특히 출산으로 이어지는 임신)은 공적인 사안이 된다. 배가 불러오면 임신 사실을 밝힐지 말지 결정할 선택권도 없이 내 임신 여부는 생판 모르는 행인에게도 알려지는 공공정보가 된다. 자녀를 언제 가질지 내 배우자와 둘이 조심스럽게 결정한 일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사안이 된다는 게 참 묘한 등식이다.
국가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이상 삶의 많은 부분이 공적 영역에서 제공되고 통제되고 관리받는다. 임신 및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임산부에 대한 제도적 배려, 건강한 출산과 육아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임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거슬린다. 대뜸 "아기는요?” 하고 맡겨놓은 세탁물 찾으러 온 것처럼 묻는 중년 남성의 질문과 어딘가 맞닿아 있다. 2016년 행정안전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숫자를 지도에 표시한 출산 지도를 발표했다. 2020년 국토부에서 발표한 2019 주거실태조사에서는 ‘신혼부부가구’를 정의하면서 여성 배우자의 연령만 만 49세 이하로 제한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구만 신혼부부로 정의해 정책적으로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동남아 출신 여성과 농촌 남성의 국제결혼을 지원금까지 지급하며 장려한다. 이런 정책들이 왜 시대착오적, 성차별적, 심지어 인종차별적인지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였기에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근데 난 그냥 궁금하다. 저출산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 출산을 장려해야 될 일이고, 출산을 장려하려면 여성들이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해소시키는 게 우선일 텐데. 여성들에게 출산 좀 해주시라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가부장적인 정책들만 내놓고 있는 걸까. 출산에 있어 여성을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쯤 사라질까.
아무래도 정책을 기획하는 연령층의 눈에는, 임신을 회피하는 여성들이 괘씸한 것 같다. 자신들은 몇 명만 나으라고 벌인 캠페인에 대대적으로 동참하며 대한민국이 선진국가로 도약하는데 기여하였는데,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애국심을 발휘해야 할 요즘 세대들은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하지만 여성에게 출산이란 국가 금융위기에 집에 있는 금붙이를 내놓는 것 정도의 결심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보니까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진짜 아니다. 그 보다 우선적으로 출산의 의무를 여성 개인에게만 지우지 말아야 한다. 임신과 출산이 일하는 여성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환경이 정착하고 임신한 여성에 대한 환영과 배려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이루어지더라도 여성이 임신하기까지의 결정은 제발 좀 사적 영역으로 존중해 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