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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19. 2019

초록 성냥갑

by 수연

 사장은 너풀거리는 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초록색 바탕에 무궁화 꽃이 그려진 성냥갑이었다. 그리고는 성냥을 꺼내어 긁었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안 나. 1층까지 갖고 다니면서 보고 포스기 서랍에 두고 가. 알았지?”

사장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까지 보고, 나는 한참 그 성냥갑을 관찰했다. 벽면과 테두리 쪽의 흰색이 약간 누레진 것으로 보면 이건 꽤 오래된 것이 아닐까-부터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꽤 멋스러운 것 같은데 고작 용변 냄새 없애는 데에만 쓰임이 있는 걸까, 포스기 서랍에는 이 성냥갑이 많이 있는 걸까, 사장 치마와는 근데 많이 안 어울린다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 2층 화장실 문고리를 당겼다. 잠겨있었고 곧 툭툭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 ‘아 마침 잘 됐다.’ 하며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포스기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왜요? 정산했지 않아요?” 마감 조가 특유의 큰 목소리로 말을 시켰다.

“아 네, 성냥 두고 가라 하셔서요.”

서랍장 끝 모서리 쪽에 다른 두 개의 성냥갑이 더 있었다. 그에게 원래 이 성냥이 화장실 쓰임용이냐고 묻자, 그렇긴 한데 사장 취미가  낡은 것들을 모으는 것이라며 맘에 들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동안 뭐가 없어져도 먼저 안 적이 없다고. 내 손에 있던 초록 성냥갑을 열어보았다. 성냥은 세 개가 남아있었다. 하나는 반토막이 나 있고. 잠깐 고민하다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근무일지를 쓰고 퇴근하였다.


 밖은 캄캄하고 꽤 쌀쌀했다. 3층짜리 흰 건물은 에어컨이 풀가동되어도 답답한 열기가 돌았었는데. 휴대폰을 보니 9시 20분이 조금 넘어있었다. 퇴근길은 여느 때와 같이 고요했다. 적막함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어봤다가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종아리도 저리고 눈도 침침했다. 음악은 답답함을 더 증폭시켰다. 방까지는 신호등 하나와 골목 하나가 더 남았다. 어슬렁거리며 신호등에 몸을 기대는데, 신호등 건너편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세모난 귀가 솟아있고,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믹스견이었다. 강아지는 목줄을 달고 있었는데, 주인도 없이 혼자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줄은 아는 것인가? 의아하는데 초록불이 켜졌고, 강아지가 절뚝이며 길을 건넜다. 저 강아지는 집 가는 길을 아는 강아지인가 보다 하고 나도 건너는데, 강아지가 중간에 길을 건너다 말고 내가 가는 쪽으로 돌아왔다.

“역시 네가 길을 알리가 없지.” 주인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방은 나 누울 곳만이 겨우 있다. 집 없는 강아지를 구해주려면 강아지 침대까지 있을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골목에 들어섰다. 가로등도 희미한 좁은 골목. 덜그럭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강아지가 목줄을 끌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너 집에 가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내 발가락을 물었다. 작은 것의 이빨은 꽤 셌다. 혼자 남을까 봐 강해진 것인지 나를 놓지 않았다. 너 주인을 물지 그랬니?라고 말하며 발로 밀어내려는데 저리던 종아리에 쥐가 나서 주저앉아버렸다. 강아지는 놀랐는지 발가락을 놔주었다. 엄지발가락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실 종아리 근육이 아파 발가락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강아지가 더 안절부절못하며 내 머리카락을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초록 성냥갑을 꺼내어 성냥불을 켰다. 불로 위협하여 쫓으려던 셈이었다. 그러다가 머리카락이 좀 탔다. 강아지 털은 타지 않았다. 강아지는 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을 놓고, 성냥불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의 목줄은 초록색이었고, 종아리 쥐는 어느새 진정되었다. 성냥을 들고 몸을 일으켜 절뚝절뚝 걸었다. 강아지도 절뚝이며 걸었다. 우리는 드디어 회색 방으로 들어갔다.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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