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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루 Oct 03. 2023

오야꼬동

가끔, 손님들은 저와 사진을 번갈아 봅니다



천사와 수호자

엄마와 아이가 함께 걸어갑니다. 젖은 잎사귀도 툭툭 털어주고, 나뭇가지를 주워 길가의 지렁이도 화단으로 옮겨 줍니다. 이러다 어린이집은 언제 가나 엄마는 애가 타지만, 그저 물끄러미 지켜볼 뿐 재촉하진 않아요. 그래서 아이의 한 걸음이 좀처럼 바빠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끝없이 줄지은 개미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이제 엄마도 체념한 듯 함께 세어 봅니다.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방긋방긋. 엄마는 내내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아요. 서로가 가장 소중한 존재로 만나 이렇게 기나긴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 여행을 떠난 어머니

“이 집 카레가 삼삼하니 맛있어! 너도 먹어 봐” 연로하신 백발의 노모(老母)께서 은발의 최목사님을 아기 대하듯 카레를 한술 떠서 내밀어요. “껄껄껄~ 제가 모시고 왔잖아요. 저는 먹었어요. 어머니 많이 드세요” 기억을 바로잡아 드립니다. 어머니는 그렇구나 하시지만 자꾸만 또 다른 말씀을 하세요.


“어머니, 그 아이는 이제 다 커서 장가를 보내야 해요” “그건 벌써 10년 전 이야기고요” 이번에는 최목사님이 마치 아기를 대하듯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로. 우린 눈이 마주쳤고 싱긋이 눈웃음을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과거 어느 때쯤으로 행복한 시간 여행을 떠나 신 것 같아요.



지금은 하늘에 계신 부모님 결혼 사진


어쩌면...

에비동을 주문하신 엄마가 새우 한 마리를 어린 아들에게 건넵니다. 저는 속으로 두 마리 중 하나를 줘버리면 어떻게 식사를 마무리하시나 걱정이 됩니다. 아빠는 면만 쏙 건져 먹은 아들의 식은 라멘 국물에 당연한 듯 밥을 말아 드시고요.

목수 아버지의 손가락 한마디가 잘려 나갈 때마다 동생은 딱 그만큼 자랐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닭 껍질로 소주를 드시던 아버지가, 생선가시로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아버지의 마른 살점과 어머니의 부드러운 속살을 나눠 먹고 자랐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를 닮았데요

몇 해 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저는 어른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번거로운 음력 계산법의 생일을 기억해 주거나, 밥을 남기지 않았거나 이른 귀가와 같은 사소한 일로 칭찬하는 이가 없습니다..


부산에서 동생으로부터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영정사진과 가족 앨범 몇 권. 이대로 상자를 닫으면 언제 다시 열어 보게 될지 몰라서 두 분의 결혼사진을 나무 액자로 담아 제가 가장 오래 머무르는 이곳 선반에 올려 뒀습니다. 가끔, 손님들은 저와 사진을 번갈아 봅니다. 아버지를 닮았데요.


 

유년 시절 해운대 솔밭에서 가족들과의 모습



※   오야꼬동은 닭고기와 계란이 함께 들어가는 대표적인 덮밥 요리인데요. 부모인 닭과 자식인 계란이 한 데 들어간다고 해서 부모를 뜻하는 오야와 자식을 뜻하는 꼬를 합친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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