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너에게 #11
인생의 반환점은 언제였을까.
지금까지 그런 시점이 존재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시점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충격을 받은 크고 작은 사건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마주한다고 해도 일상이라는 선이 약간 흔들릴 뿐 점을 찍고 우회전(혹은 좌회전)을 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딱 한 번만.
변환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크게 깨달은 일이 있었다.
일이라기보다 어떤 사람의 한 마디였다.
내가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아르바이트로 한국어 선생님을 시작했었다.
네이티브가 아닌 내가 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는데 근무 조건 중 하나가 일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 전공은 국어학이었다...)
가르칠 대상은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된 일본계 항공사 직원 분들이었다.
주로 비행기 정비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고 나이는 40대~50대, 직업 특성인지 남성 분들이다(그분들 왈 여성도 정비사가 될 수 있지만 육체노동이고 약품들을 쓰는 업무 특성상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아무튼 그분들에게 카페에서 한글이랑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어찌어찌 3년 정도는 그 일을 계속했다.
그 사이 일본으로 귀국하신 분도 계시고 중국으로 가거나 한국에 남는 분도 계셨다.
그만두게 된 건 내가 학교생활을 마치고 잠깐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어서였다.
그만둘 때 가장 오래 가르친 분과 그분 따라 함께 한국에 오신 아내 분과 식사를 하게 됐다.
남편 분이 수업 때 아내 분의 생활 고민, 가령 택배가 잘못 배송되었는데 관리실에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이런 식재료를 찾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등을 듣고 있었던 나는 아내 분에게 위로의 마음도 담아 여쭤봤다.
'한국 생활 힘드시지 않으셨어요?'라고.
그때 아내 분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후회했어요. 저는 일본에서 남편이랑 엄청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라고.
그때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 그랬냐면.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라는 부분이다.
행복하다는 말을 자기 입으로 말해도 되는구나.
웃으면서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였구나.
나는 그게 놀라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말이 놀라웠다니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에는 "행복"은 살다가 그냥 느끼는 감정이 아닌 무언가 큰 성공 끝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쁘고 즐거워도 그게 행복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행복은 이루는 것이고 그냥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물론 그분은 무언가를 이루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었기에 놀라웠던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도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아, 그렇게 표현해도 되는구나.
그냥 살다가 행복할 수 있구나.
다음 날부터 나도 조금씩 행복하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쓰면 좋을 것 같았다.
해맑게 웃는 그 아내 분처럼 되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 이제는 이렇게 생각이 변했다.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거다.
객관적인 판단은 중요치 않은, 성공여부와 무관한, 그리고 그 성공도 주관적일 수 있는, 내가 느껴도 되는 내가 정하기 나름인 감정이라고.
한 번밖에 못 뵀었지만 그분의 웃는 얼굴은 지금도 떠오른다.
나도 그런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냥 행복하다고.
어제의 너에게
머리보다 감정. 느껴도 되고 표현해도 되는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