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Dec 16. 2021

생명은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

< 2021 작당모의(作黨謨議) 연말 결산 >

   작당모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구독하고 있던 김소운 작가님과 진샤 작가님이 다른 두 분의 작가님들과 함께 ‘작당모의’라는 이름으로 공동 매거진을 만들고 글을 올리고 계셨다. 하나의 공통 주제가 주어지면 색이 다른 네 분의 작가님들이 그 주제가 담긴 생각을 펼쳤다. 그분들의 글은 자유로웠다. 하나의 주제로 묶여있는데도 제각각 모두 다른 글이었다.  

   ‘글을 가지고 논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 주의 주제는 심수봉이었다. 진샤 작가님이 쓰신 ‘백만 송이 피우려다 망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일으켰다. 뭐가 망했다는 걸까.

   ‘보이시나요. 흐드러진 꽃들이.’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기대가 더해졌다. 담담하고 가지런한 고백이 글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백만 송이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역할을 맡긴 사람은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 기대가 한껏 차오르고 있는데 중간에 글이 끊겼다. 그러고는 글의 흐름이 바뀌었다.

   ‘여기까지 쓰고, 아이들 하원을 나갔다.’

   아니 갑자기? 백만 송이 꽃은 어쩌고. 그래서 뭐가 망한 건데?


   백만 송이의 꽃이 사라지며 이어진 글은 현실로 돌아온 작가님의 고백이었다. 심수봉이라는 주제가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한 소회를 적었다.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았던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 솔직했다. 낯설었다. 휘청거렸다. 아득했다. 원망했다. 이런 단어들과 함께 실패를 인정했다. 백만 송이 피우려다 망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작가님의 글이었다.


   미리 정해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이렇게나 글을 잘 쓰시는 분도 힘들어하실 만큼 만만치 않구나. 그래도 망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잘 풀어내시다니. 쉽게 이해가 되고 한껏 공감을 받았다. 내 이야기만 잘 풀어쓰면 되는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 글쓰기가 어떤지를 묻는 어느 댓글에 진샤 작가님은 단호한 답글로 쇄기를 박았다.

   ‘주제 글쓰기, 가능하시면 하지 마세요. 생명 단축되는 느낌이에요.’


   그날 저녁, 브런치의 제안 알람이 울렸다. 망했다는 글을 올리셨던 진샤 작가님이었다. 작당모의 매거진을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고료는 ‘함께 쓰는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한다면서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제안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제 글쓰기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바로 오늘 낮에 말하셨던 분이 지금 생명 단축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작가님, 진심으로 함께 하고 싶어요.’

   진심이란다. 이 분이 무서웠다.




   8월 작당모의에 합류해 함께 글을 쓴 지 다섯 달이 되었다. 연말을 기념해 작당모의의 다른 분들의 글 하나씩을 추천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글 하나만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작당모의에 올라온 모든 글이 좋았고, 모두를 추천하고 싶었다.


   김소운 작가님의 글은 우아하다.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문장이 가득 찬 자신의 글 상자에서 그때그때 적절한 문장 구조를 꺼내는 듯한 느낌이다. 이 분의 글을 읽다 단순한 문장의 반복인 내 글을 읽으면 지루함이 느껴진다. 이 분의 글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글이다.


   진우 작가님의 글은 기발하다. 진우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이 분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글 하나하나가 모두 블록버스터이다. 내 글에 단 하나 넣기도 쉽지 않았던 기발함이 글 전체에 차고 넘쳐흐른다. 내가 1년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전혀 흉내 내지 못할 글을 매주 써내신다. 천재이심이 분명하다. 다시 읽어도 역시나 경이롭다.


   진샤 작가님의 글은 고급지다.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고 고상하다. 그런 단어들을  어디서 찾아내시는 건지 매번 궁금하다. 평범하지 않은 단어를 쓰는데도 매끄럽다.  자리에 들어갈 단어는  단어밖에 없다는 느낌이  정도로 적절하다.  분의 글을 읽다 보면 매번 사전을 옆에 끼고 글을 쓰는 내가 안쓰럽다.


   이런 분들과 나란히 서서 글을 쓴다는 게 영광이다. 새로운 주제가 정해지고 그 주제를 담은 글 하나를 올릴 때마다 진샤 작가님의 경고처럼 정말로 생명이 단축되는 느낌이 들지만, 이 분들과 함께 글을 쓴다는 게 즐겁다. 단축되고 있는 생명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설마 글 좀 썼다고 정말로 생명이 단축되기야 하겠어라는 마음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이지 작당모의에서 생명은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


   연말 결산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다른 분들이 쓰신 글을 천천히 읽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글 사이에 끼어 있는 내 글도 함께 읽었다. 뿌듯했다. 어느덧 작당모의에 내 글이 아홉 개가 쌓였다. 작당모의에 첫 글을 발행할 때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혹시 내 글이 작당모의 글의 수준을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처음부터 작당모의에 모인 분들은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즐겁게 글을 쓰자는 것만을 바랐다. 이제는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비록 생명은 조금씩 단축되고 있긴 하지만.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는 날개가 있어. 이 글이야, 책이야, 사람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