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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Jun 27. 2024

월급날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39일이 지났습니다.

퇴사 후 39일간의 기록

 2024년 5월 20일. 퇴사 후 처음으로 맞는 월요일. 원래라면 제대로 된 급여를 받았어야 하는 월급날이다. 퇴사를 선택한 나는, 일할 공제되어 평소의 3/4 쯤 되는 급여를 받았다. 당분간 내가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목돈이라고 생각하니 월급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회사생활 12년 차에 갑자기 이렇게 퇴사를 선택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나로선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모아둔 돈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닌 데다가, 금수저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회사에서 돈을 벌어야 했는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지쳐서 일 자체를 못하겠다는 생각에 약간은 극단적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근데 솔직히 난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어떻게 다들 오랫동안 일하는지 참 궁금하다. 대학교 다닐 때까지는 1년에 몇 달씩 방학이 있었는데도 학교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었나? 근데 갑자기 1년에 15일 휴가를 주면서 그만큼만 쉬라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의미에서 직장인 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비결이 있으시다면, 간단하게라도 비결을 알려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도 꾹꾹 버티며 이직처까지 구해서 퇴사를 하던 내가 믿는 구석 하나 없이 이러는 게 좀 무모해 보였지만, 어쨌든 퇴사를 해버렸고 퇴사를 한 이상 난 이 선택을 무조건 후회 없는 선택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지금 아이가 있거나 결혼을 한 상태라면, 누군가를 꼭 부양해야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이므로, 이 순간을 감사하게 여길 필요도 있었다. 퇴사하고 잠시나마 쉴 수 있다는 건 아직은 내가 나를 조금 더 돌아봐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 시간을 소중히, 재미있게, 가치 있게 쓰고 싶다.




 그래서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없는지, 뭘 할 수 있는지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당장 <내 인생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제목의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서, 퇴사한 상태에서 해볼 만한 일들을 쭉쭉 써 내려갔다.


스프레드시트

  실제로 시트는 이것보다 조금 더 내용이 많긴 하지만, 시트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내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체지방률 30% 아래로 만들기

평소의 관심사 : 해외봉사나 지방살이 해보기

도전 : 아이템 발굴해서 창업하기

학업 : 대학원 가기, 외국어 공부하기

평생의 꿈 : 글쓰기 공모전 당선되기, 펀딩 하기, 브런치 열심히 하기 등등

부업 : 전자책,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유튜브, 인스타

커리어 : 유사업계로 취업하거나,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


 이렇게 막연히 내가 하고 싶어 하던 것들을 정리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비워내는 것이 미학인 시대. 난 그 시대를 역행하면서 살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머리가 좀 더 가벼웠다면 퇴사를 하지 않았으려나, 잠깐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내 능력치를 고려했을 때, 이건 퇴사한 상태에서도 다 해내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재직 중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아등바등거렸다. 결론적으로 스트레스만 받다가 해낸 것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막상 정리해 보니 할 필요가 없는 일들도 눈에 보였다. 예를 들면, 대학원 가는 일이 그랬다. 뭘 하고 싶은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왜 그렇게 대학원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가! 그냥 다들 가는 대학원이라 무지성으로 대학원을 외치고 다녔던 것은 아닌지.


 그냥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장은 내 욕심이라고 느껴지는 것들,

 그런 것들을 지우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몇 가지로 정리되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체지방률 30% 아래로 만들기 (원래 36% 수준)

평소의 관심사 : 지방살이 해보기

학업 : 외국어 공부하기

평생의  : 펀딩 하기, 브런치 열심히 하기 등등

부업 : 전자책,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커리어 :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


 지운다고 지웠지만 여전히 많긴 하다. 그래도 이렇게 지웠으니 이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기준으로 퇴사 39일 차.


 한 3-4주쯤 지났을 줄 알았는데 쉬는 날은 참 빨리도 흘렀다. 퇴사 후 정말 멋지게 살아보자고 저런 스프레드시트까지 만들었지만, 원대한 계획에 비해 내 실행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일단 운동? 하긴 했는데…

내 운동의 목표는 체중 감량과 체지방률 감소였다. 키가 170쯤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겉모습은 적당한 편이었으나 체지방률이 35~36% 수준이라니. 근육이 없어도 너무 없다. (심지어 트레이너 선생님은 "회원님,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사셨어요?"라고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 세 번 정도는 홈 트레이닝을 했는데, 그 정도 강도로는 근육을 늘릴 수 없다는 판단에 그룹 PT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룹 PT를 하면서 인바디를 했을 때 61.6kg에 34.8%의 체지방률을 기록했다. 형편없는 수치로 보이지만, 체지방에 대해선 나름 개선된 수치이기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실로 오랜만에 본 34라는 숫자였다. 사실상 35나 다름이 없긴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63kg가 되었다.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먹어치우는 캐러멜 팝콘이나 마카롱, 휘낭시에의 양이 만만치가 않았나 보다.


글쓰기?

브런치를 보면 알겠지만 퇴사 후 겨우 딱 1건의 글을 발행했다.


블로그?

계획대로라면 한 달에 100만 원쯤 버는 블로거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커리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아예 지하 깊숙한 곳에 묻어버렸다. 내가 했던 일은 하기 싫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다른 일은 잘 모르고, 했던 일은 하기 싫다. 이 연차에 이렇게 대책이 없어도 되는 건가?


이로써 회사 다닐 때 못 했던 것들은 퇴사를 해도 할 수 없다는 명제를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인가?


그래도 그나마 39일 동안 제일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건 5박 6일 어촌 체험을 다녀온 것이다.

사진은 내가 가오리를 손질하는 모습인데, 나도 원래는 이런 손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5박 6일 동안 그물 손질, 어선 타기, 손질하기 등등을 하며 그 어떤 복잡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뭐 먹지, 오늘 물고기가 얼마나 잡힐지 생각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끝나니까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난 퇴사하고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나 혼자 아무리 저런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봤자, 비루한 실행력으로는 또 애매하게 쉬다가 애매하게 취업할 것 같아서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공표하게 되었다.


앞으로 퇴사 100일 차까지 목표한 일들 중에 뭐라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길...

딱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하는 일이 있기를



+

이 글을 발행하고 다음날 갑자기 이 글의 조회수가 올라서 뭔가 했는데,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소개되었다.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행복해!!!!!!!!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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