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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Feb 15. 2020

[Ep7] My hero

My grandfather

<자아 정체성 찾기>

Q7. 혹시 멘토나 닮고 싶은 사람(롤모델),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이 생기는 지도 알려주세요.

내가 태어나서. 그리 기쁘셨다고.ㅎㅎ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 첫째 아들의 아픈 손가락이자, 당신의 손녀입니다.


딸이 귀한 집에서 태어난 덕분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귀하다는 분유를 한 달에 7통이나 먹고 자랐다지요?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쯤에는 손만 잡아주면 배시시 웃으며 아무나 따라다니는 통에, 윗마을의 아이 없는 집 이모를 따라가고 있는 걸 데리고 왔다고도 들었습니다. 

세발자전거도. 전축도. 다 내 차지였고. 한글을 모르는 나를 위해 당신의 구연동화를 독차지했다고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나 역시도 할아버지 앞에서 만큼은 기쁘고 슬픈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큰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할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그 날의 돈가스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도 눈물이 많았던 건지. 할아버지와 오랜만에 먹는 밥상 앞인데도 그렇게 서럽게 울었었지요. 보고 싶었다는 말로 시작해 할 수 있는 말이 참으로 많았는데도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전화 한 통 외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당신은 내가 책에도 배운 적 없는 사랑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나 밖에 모르고 나 하나 살아남기 바빠서 그 전화마저도 마치 숙제하는 심정처럼 겨우 하는 내게 말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 어떤 누구에게라도 곁을 허락하지 못해 마치 무인도에 혼자 갇힌 사람처럼 생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게. social bridge를 놓아준 셈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이 놓아준 그 탄탄한 다리 덕에. 나는 그 어떤 불안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을 영정사진으로만 보아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지만. 

당신이 내게 알려준 그 아무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마음은, 늘 내가 힘들고 지칠때마다 당신을 생각나게 합니다. 편히 쉬게 하지 못하고 늘 어리광만 부리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까지도 덩치만 컸지 영락없이 당신의 손녀인가봅니다. 


오늘 역시도 그러한 날입니다.

가만가만 잡아주던 손이 기억납니다. 

조용히 말해주던 위로의 말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딱 오늘까지만. 딱 한번만 더. 어리광 부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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